탄식의 근거가 된 창조주 하나님의 힘(욥기 26:1-14)
욥은 빌닷이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나요?
힘과 지혜가 부족한 이에게 줄 것은 비난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입니다. 욥은 빌닷을 향해 직접적으로 말합니다(2인칭 단수형).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강조했던 빌닷에게(25장) 욥이 묻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힘없는 자'와 '기력 없는 자'를 얼마나 도왔으며, 그러한 자를 얼마나 구원했는가? 그러한 자에게 지혜와 지식을 갖게 하려고 얼마나 힘썼는가? 너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아는가?" 욥은 그토록 인간 실존을 잘 아는 빌닷이 연약함과 비천함에 싸여 있는 자를 돕기는커녕 더욱 괴롭게 했음을 깨우칩니다. 인간 실존을 아는 지혜자라면 마땅히 약자를 비난하지 말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인간 실존의 연약함과 비천함을 기억하고 내가 적극적으로 호의를 베풀 대상 누구인가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비천한 죄인인지를 알면서도 내가 그 인간들 속에 포함된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와 허물은 잘 보면서도 나 자신이 그들과 동일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보지 못합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나 자기 합리화와 자기 정당화를 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았으나 백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참아주지 못한 사람처럼 나 또한 이웃에 대해서 참아주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로 이웃을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이웃이 가족이든 직장동료이든 교회의 형제자매이든 낯선 타인이든 내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마 7:12).
욥은 창조주 하나님의 힘을 어떤 측면에서 이해했나요?
피조물은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부터 피할 수 없습니다. 욥은 창조주 하나님의 '힘'에 대해 말합니다. 지하 세계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힘(5-6절), 창조 세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힘(7-9절), 원시 시대에 수행된 하나님의 창조 활동(11-13절, 신화적 배경)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이 (바다의) 깊이, (하늘의) 높이, (땅의) 넓이까지 세 차원에서 묘사되고, 혼돈과의 투쟁에서 승리함으로 입증됩니다. '창조자'와 '유지자'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행위는 '그가 하시는 일의 일부'(14절)에 지나지 않습니다. 욥은 은유적 표현인 '우레 소리'(14절)로 하나님 행동의 위협적 측면을 묘사합니다. 그러한 행동은 욥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욥에게 하나님의 힘이라는 주제는 찬양의 동기가 아니라 탄식의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욥과 같이 이해하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이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많이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욥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일부만을 아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알고 믿고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안다고, 잘 안다고 자부하는 것은 참으로 교만하고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뜻과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아 고통스러운 사람들 역시 그렇다고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이 행하시는 일의 의미를 다 알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요 3:16).
오늘의 기도:
주님!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다른 이들을 대접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이해받고자 하는대로 다른 이들을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때때로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뜻과 행동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확증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우리의 소망으로 붙들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