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직접 만난 자의 온전한 회개와 변화(욥 42:1-6)
하나님에 관해 '듣는 것'과 그분을 '보는 것'은 욥게 어떤 차이를 가져왔나요?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없고, 원하시는 바를 모두 이루시는 분입니다(2절). 두 차례에 걸친 하나님의 발언을 들은 후, 욥은 그분의 주권을 확실히 인정합니다. "잘 알지도 모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3절)는 하나님의 말씀(38:2)을 인용한 것입니다. 욥은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더는 말하지 않겠다고 한 첫 번째 답변(40:5)에 이어, 자신은 하나님이 묻는 것에 답변할 말이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4절). 지금까지는 귀로 들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5절). '들음'과 '봄'의 차이는 계시의 확실성입니다. 두 번의 하나님 발언을 통해 욥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응답을 경험하며, 그분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듯 내가 선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누군가가 “나는 하나님을 잘 모른다.”라고 하면 불신앙이 깊어진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욥은 지금 “내가 하나님을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던 것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를 이제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함을 아는 것 자체가 진실한 앎’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고 하는 그 어떤것도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서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알려주셔서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개념이나 신념이 아니라 살아계신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함으로 새롭게 알아가야 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번 들어도 내가 감각으로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아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머리로만 알 수 없습니다. 삶가운데서 하나님과 만나면서 그분을 체득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과 세계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욥의 관점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본 후에 욥은 변화되었습니다. 6절은 다양한 번역이 가능합니다. 욥이 '회개'하는 모습을 강조하거나 새로운 '깨달음' 혹은 '위로'를 얻었음을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발언이 욥에게 사고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욥은 과거 자신의 생각이 짧았고, 자신의 시각이 하나님의 높고 깊으신 경륜에 미치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욥은 이러한 변화를 선언하고 재확인합니다(6절). 이렇듯 욥은 하나님을 '봄'으로써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행위 화복 관계의 기계적 적용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욥기를 통해 내 안에 변화된 관점(생각)은 무엇인가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중심적인 존재들입니다. 내 손톱 밑에 가시하나만 박혀도 온 우주가 다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이 느낍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의 자기중심성에 대해서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이것을 죄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가 다 죄인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바로 죄의 뿌리가 자기중심성 속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죄를 회개한다. 죄에서 돌이킨다'고 하는 의미는 '나의 자기중심적인 주장을 거두어 들이고 하나님 중심으로 나의 삶을 돌이킨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란 나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더 나으며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선함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께서 나를 찾아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에게 주님을 알려주시고 보여주시고 만나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뜻이라는 어리석음에 갇혀 살던 나를 풀어 자유케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고 세계를 바라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의 눈을 열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날마다 교제하며 더욱 주님을 온 삶으로 알아가기를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