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더 사랑하고 작은 자를 영접한 상급(마 10:34-42)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이 세상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라면, 이는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강을 주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물로 믿는 자는 예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지만, 이는 저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장된 평강을 거부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며,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신앙의 길을 걸을 때 참된 평강을 누립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보다 그분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겪는 아픔과 손해는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하고자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반드시 영생의 복을 누립니다.
내가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부모 자식 상관 말고 각자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충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분명하게 마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충성이 우선순위 목록의 1순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까운 제자들에게조차 이것은 어려운 요구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고,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했고, 나머지 제자들은 다 도망가서 숨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주님의 이 요구는 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삶의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새로운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새로운 길 때문에 가정에 분열이 일어나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따르면 분열이 뒤따를수밖에 없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 하실 때는 언제나 구원이 필요 없다고,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따른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앞에서 우리를 '내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라고 약속하십니다.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42절)는 일차적으로 누구를 가리킬까요?
복음 전도자를 영접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4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예수님-하나님'의 연결 고리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당시나 오늘날이나 복음을 전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냉수 한 그릇을 구해야 할 형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같은 제자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상이 있다고 하십니다. 성도는 연약한 이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마땅히 호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작은 호의와 사랑을 기억하시고 상 주십니다.
내가 작은 도움이라도 주며 격려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서 이웃 사랑이 나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면 반드시 그에 따른 연쇄 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 이웃이 사람들이 보기에 큰 사람이든지 작은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그 사랑으로 섬긴일은 예수님을 섬긴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은 예수님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작은 격려의 말 한마디, 물 한잔과 같은 작은 나눔이라 할찌이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을 보고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을 알고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알려주신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옛 나라, 옛 삶에 오염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소서.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