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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외면한 사랑은 하나님 지혜가 아닙니다(삼하 14:12-24)

Posted by 행복한 말씀묵상팀 on

드고아 여인의 충고(삼하 14:12-17)    

12 그런데 여인이 또 이렇게 청하였다. `이 계집종이 나의 주 임금님께 끝으로 한 말씀만 더 올리게 하소서' 왕이 허락하자

13 그 여인이 이렇게 말을 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와 똑같은 부당한 일을 범하고 계십니까? 임금님의 맏아들이 들녘에서 죽은 다음, 이미 3년 동안이나 둘째 아들마저 고국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임금님께서 이 계집종의 아들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판결을 내려 주셨으니, 이제 만일 임금님께서도 쫓겨난 아들을 데려오지 않으시면 저절로 그릇된 행동을 하시게 됩니다.

14 우리 인간은 모두 죽게 되어 있어서, 한번 죽으면 땅에 쏟아진 물이 잦아들어서 없어지듯이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게 마련이고 죽은 사람을 다시 이 세상으로 데려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산사람은 계속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산 사람의 생명은 쉽게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인에게도 살 길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멀리 쫓아내셨던 사람마저도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도록 온갖 길을 다 열어 놓아 주십니다.

15 이 계집종도 하나님의 그러한 용서를 믿고 이렇게 임금님을 찾아와 호소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친척들이 몰려들어 괴롭힐 때마다 저는 임금님을 생각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선 하나님과 같이 살인자에게도 살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16 임금님만은 나의 가련한 처지를 알아주시고, 나의 남은 아들마저 죽이려는 사람의 손아귀에서 나를 건져내 주실 것이다. 이 아들마저 죽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에서 이 여종의 가족이 완전히 끊어져 버리는 큰 슬픔을 임금님만은 알아주실 것이다.'

17 또한 저는 이런 생각도 하였습니다. `임금님은 나에게 좋은 말씀으로 위로해 주실 것이다. 나의 주 임금님은 하나님의 천사와 같으신 분이어서, 나의 처지에서 무엇이 좋고 나쁜가를 분명히 가려내 주실 것이다.' 앞으로도 언제나 임금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셔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압살롬을 돌아오게 (삼하 14:18-24)

18 왕은 드고아 여인의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 물어 볼 말이 있으니 조금도 숨기지 말기 바라오' 여인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오.'

19 왕이 물었다. `요압이 그대에게 이런 일을 시켰소?' 여인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사실입니다! 임금님 앞에서는 진실로 어느 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요압 장군이 제게 해야 할 말과 해야할 일을 가르쳐 주면서 저를 임금님께로 보냈습니다.

20 요압이 이런 요구를 느닷없이 임금님께 올리지 않기 위하여 이런 연극을 꾸며 주었으나, 임금님께서는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슬기로우셔서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을 환히 다 아십니다.'

21 그러자 왕은 요압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가 그대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소. 이제 가서 내 아들 압살롬을 다시 데려오시오.'

22 요압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을 하면서 다윗에게 아뢰었다. `임금님께서 이 종의 간청을 들어주시니, 이 종이 임금님의 총애를 입은 줄 이제야 알겠습니다.'

23 요압은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다.

24 그러나 왕은 이렇게 명령하였다. `그를 자기 집에 데려다 두되, 내 앞으로 데려오지는 말아라.' 이리하여 압살롬은 다시 자기 집에 살게 되었으나 왕을 만날 수는 없었다. 

<말씀묵상>

드고아 여인은 사랑과 정의 어느 쪽만 강조해 다윗의 결정을 조종하려 했나요?

'사랑'과 '정의'를 상충되는 것으로 이해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드고아 여인은 사랑만 강조해 다윗을 설득합니다. 백성에게 피의 복수를 하지 말라고 하는 왕이 왜 내쫓긴 압살롬은 돌아오지 못하게 하느냐고 지적합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도 산 사람의 생명은 쉽게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인에게도 살 길을 열어 주시고"(14절)라는 일반적인 지혜의 말로 다윗을 설득합니다. 그러나 정의를 외며한 사랑은 위험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백성에게 생명을 주시지만, 결코 정의를 무너뜨리시지 않습니다. 다윗도 이를 알기에 압살롬을 그리워하지만 불러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드고아 여인은 자비로운 결정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고 하면서 다윗을 조종하려 합니다. 

정의를 외면한 사랑은 어떤 문제를 초래할까요?

하나님께는 정의와 사랑이 ‘하나’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동전에 양면이 있으나 동시에 한 동전을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은 양면을 가지고 있으나 동시에 ‘하나’라는 동일성을 분명히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한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사랑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말씀속에서 죄를 책망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공의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말씀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지 못함으로 여전히 율법아래 묶여있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굳이 예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대속물이 되게 하셨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압살롬의 귀환을 허락했음에도 다윗이 그를 만나 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침내 다윗은 드고아 여인의 말이 연극인 것과 요압이 배후에 있음을 알아챕니다. 모든 것이 들통난 후에도 드고아 여인은 당황하지 않고 요압의 충정과 다윗의 지혜를 칭송합니다. 결국 다윗은 요압을 불러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압살롬이 에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다윗은 그를 만나 주지 않습니다. 암논을 죽인 죄는 용서해 주겠지만 왕자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지는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드고아 여인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모든 것을 아는 지혜가 있다고 칭송했지만(20), 다윗은 압사롬에게 올바른 정의를 실행하지 못했고 인정에 끌려 압살롬을 그냥 용서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다윗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다윗 가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계속됩니다 

내가 인정에 끌리지 말고 정의를 세워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공의를 세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세상의 법과 정의가 있는 자에게 기울 교회는 약자 편에 서야 합니다.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해야 하고, 소외되고 아무에게도 호소할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편을 가르고 담을 쌓아 세리와 창녀를 멀리 할때 죄인과 창녀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권력이 가진 자들 위주로 돌아갈 에수님은 낮은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모순과 정의에 감아서는 됩니다. 그럴수록 우리의 신앙은 나를 위한 신앙으로 굳어져 버립니다. 돈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정의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자녀나 어떤 이를 향한 애정 때문에 혹시 우리가 그의 죄를 묵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봅니다. 말씀 안에서 경책하고, 함께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주변의 시선과 말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이며 바른길로 행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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