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섭리, 깨달음을 구하는 반문(하박국 1:1-17)
정의가 굽고 패역이 만연한 유다를 징계하시기 위한 하나님 섭리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그분의 백성에게 있습니다. 하박국 예언자는 정의가 굽고 패역이 만연한 유다 상황에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하박국의 항변에 하나님은 사납고 성급한 백성(바벨론)을 일으켜 유다를 징계하시겠다는 심판 선언으로 응답하십니다. 당시 유다의 주변 정세는 앗수르에서 바벨론으로 패권이 옮겨지던 때였습니다. 세계사에서 앗수르, 바벨론, 로마 등 제국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구속사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택하신 백성을 징계하시거나 도우시기 위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관점으로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악인이 형통하고 공의가 왜곡되는대도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나 같으면 이렇게 하겠는데…'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현재의 시간과 현재의 공간을 살아가는 나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답변입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현재의 불의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른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없이 초월적인 능력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의심되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라도 그분의 선하시고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고 그분의 답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하박국이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섭리에 반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인이 애매한 고통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한 것을 볼 때, 정의가 사라진 듯 느껴집니다. 하박국은 패역한 유다를 징계하기 위해 더 악한 바벨론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벨론은 무자비한 어부 같아서 선한 백성을 낚아 올리고 그물과 투망으로 끌어모읍니다.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킵니다. 하박국은 이러한 하나님 섭리가 정말 옳고 정의로운 것인지 반문합니다(17절).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것을 볼 때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 뜻을 속단할 것이 아니라 그분의 깊은 섭리가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는 정직한 질문은 믿음을 더 성숙하게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만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누구라도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만나면 당황스럽고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고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새 언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우리 곁으로 보내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태어나게 하셔서 살아가게 하시고 마침내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지고 저주받은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고통스럽게 죽게 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손에 오히려 죄인으로 정죄당하며 죽는 것을 그 누가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누가 이해할만한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말도 안되는 은혜와 사랑과 희생 덕분에 그분의 자녀가 되었고 그분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세상의 불의와 이해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답을 구할때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때때로 왜 주님이 이렇게 일하시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도 끝까지 주님께 묻겠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의 구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일하심이 오늘 우리를 살리고 생명을 주셨기에 모든 순간에 주님의 의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