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왕을 십자가에 넘긴 무책임한 결정(마 27:11-26)
왕이신 예수님이 고발과 심문에 침묵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왕이신 그분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는 분명히 시인하시지만 불의한 고발과 심문에는 침묵하십니다(11-12절). 예수님은 하나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침묵하시는데, 빌라도는 이를 놀랍게 여깁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재판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시기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아내 또한 예수님을 '옳은 사람'(19절)으로 칭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명절에 바라바와 예수님 중 누구를 석방할지 무리에게 묻습니다. 바라바는 민란을 일으켜 살인하고 체포된 자였습니다(막 15:7).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 죄악을 사하시려 극악한 살인자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수많은 고발에도 예수님이 침묵하신 사실은 내게 어떤 교훈을 주나요?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지만 사람들을 내리 누르며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어 섬기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 대한 불의한 고발은 모두 사람들 자기 자신들의 죄에 대한 고발이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불의한 고발에 침묵하신 이유는 왕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바로 그 죄인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고발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침묵하신 사실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예수님의 철저하 순종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사람들의 고발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죄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고발과 진노로 심판받아 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 중에 있는 나를 위해 살리시기 위해 침묵하신 것입니다.
무리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긴 후 빌라도는 어떻게 행동했나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세 부류가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첫째, 진리를 왜곡한 총독 빌라도입니다. 둘째, 무리를 선동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입니다. 셋째, 무지한 무리(유대 백성)입니다. 무리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준 빌라도는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는 표시로 손을 씻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놓을 권한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었기에(요 19:10), 불의한 판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무책임한 빌라도, 악한 종교 지도자들, 선동당한 무리의 절묘한 조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탄의 충동질이 있었습니다. 성도는 사람들의 시선과 의견에 휩쓸려 죄의 길을 선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수의 소리에 흔들려 하나님 뜻에 반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나요?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인간의 그 어떤 지혜로운 결정도 그 결과는 또 다른 죄악을 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죄인 한 명의 지혜에서 나온 결정이든지 아니면 죄인 백 명의 지혜에서 나온 결정이든지 그 결정은 또 다른 죄악을 행하는 데 지혜로운 결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인간의 지혜는 아무리 다수의 결정이라 할찌라도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로 결정한 총독 빌라도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나 무리들이나 모두 자신들의 오늘의 이 결정이 자신들의 생명에 더 유익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를 죽이는 결정이었습니다. 죄인들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지혜,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결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그분의 뜻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선택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 없이 하는 모든 선택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선택입니다.
오늘의 기도:
나의 죄에 대한 고발과 심판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살리시기위해 침묵하신 주님의 침묵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으시는 고난을 통해 나에게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시 않는 나의 인생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주님만이 나의 인생의 의미가 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주님만을 선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