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역사에서 징계의 역사까지(느 9:19-31)
가나안 땅을 주신 하나님(느 9:19-25)
19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불쌍히 보셔서, 차마 그들을 광야에다가 내다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낮에는 줄곧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이 가는 길을 밝히 비추어 주셨습니다.
20 선한 영을 주셔서, 그들을 슬기롭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입에 만나가 끊이지 않게 하시며, 목말라 할 때에 물을 주셨습니다.
21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이나 돌보셔서, 그들이 아쉬운 것 없게 하셨습니다. 옷이 해어지지도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도 않았습니다.
22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우리 조상에게 굴복시키셔서, 우리 조상이 시혼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고, 그것을 나누어서 변방으로 삼았습니다.
23 주님께서는 우리 조상의 자손을 하늘의 별만큼이나 불어나게 하시고,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셔서, 그 곳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24 자손이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 때에, 그 땅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을 그 자손에게 굴복시키고, 왕들과 그 땅의 백성마저 자손이 좋을 대로 하게 하셨습니다.
25 자손은 요새화된 성채들과 기름진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과 이미 파 놓은 우물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과 과일이 흐드러지게 열리는 나무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들은 먹고 만족하게 생각했으며, 살이 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그 큰 복을 한껏 누렸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느 9:26-31)
26 그런데도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께 반역하였으며, 주님께서 주신 율법을 등졌습니다. 주님께로 돌아가라고 타이르던 예언자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엄청나게 주님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27 주님께서는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내맡기시어 억압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억눌림을 받고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들을 끔찍이도 불쌍히 여기시어, 원수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건져낼 구원자들을 보내 주시곤 하셨습니다.
28 그러나 편안하게 살만하면, 주님께서 보고 계시는데도, 또다시 못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럴 때에는, 주님께서 그들을 원수의 손에 버려 두셔서, 억눌림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돌이켜 주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구하여 주시곤 하셨습니다.
29 돌이켜 주님의 율법대로 바로 살라고, 주님께서 엄하게 타이르셨지만, 그들은 거만하여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지키기만 하면 살게 되는 법을 주셨지만, 오히려 그 법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께 등을 돌리고, 목이 뻣뻣하여 고집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30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러 해 동안 참으셨습니다.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주님의 영으로 타이르셨지만, 사람들은 귀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주님께서는 그들을 여러 나라 백성에게 넘기셨습니다.
31 그러나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을 끔찍이도 불쌍히 여기셔서, 멸망시키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말씀묵상>
광야 시절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나요?
광야 시절 이스라엘은 불순종을 일삼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며 기회를 주셨습니다. 가나안 정탐 사건 후 불순종하고 거역한 자들을 치셨지만, 광야 40년 동안 그들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셨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하셨으며, 마침내 약속하신 가나안 땅까지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19~21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 지역을 정복했고(22절), 나아가 가나안 땅에서 복을 누렸습니다(23~25절). 이렇듯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한 사랑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나의 죄와 허물에도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파괴하고 사람과의 관계성을 파괴합니다. 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죄는 불신이요 교만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는 번민하여 고통합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고통을 맛본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은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압니다. 우리가 죄를 덮으려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는 죄를 더욱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덮어주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죄를 드러낼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미쁘셔서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반역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큰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을 배신하면 두려운 징계가 따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복된 땅에서 지속적으로 불순종했습니다. 거역하고, 율법을 버리고(등지고),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26절). 시간이 지날수록 반역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타락과 심판과 구원’ 사이클(27~28절)은 사사 시대부터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반복되었습니다. 타락이 점점 심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고집스럽고 교만해져 더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분께 반역하는 완고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이스라엘을 아주 멸하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두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끊을 수 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고난 중에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상의 모든 역사는 불확실성의 역사입니다. 모든 인간의 삶도 불확실합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 속에 살아갑니다. 어떤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가장 안정감 있는 영혼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신 있는 삶으로 살아가는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이 결핍된 영혼일수록 불안하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올바르고 풍성한 사랑 속에 거하는 영혼은 불안이 없고 담대합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고난중에도 안정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깨닫고, 믿고, 체험하고, 확신하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상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삶을 돌이켜 볼수록 모든 순간이 오직 하나님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말씀을 따르는 삶이 제게 가장 큰 만족이고 행복이 되게 하소서. 강퍅하고 고집스러운 저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긍휼로 덮으시는 하나님 안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