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종에서 하나님 아들로(갈 4:1-11)
종과 아들(갈 4:1-7)
1 내가 또 말합니다. 유업을 이을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어릴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고,
2 아버지가 정해 놓은 그 때까지는 보호자와 관리인의 지배 아래에 있습니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릴 때에는, 세상의 유치한 교훈 아래에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4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에 놓이게 하셨습니다.
5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여러분은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 각 사람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종으로 돌아가려는 어리석음(갈 4:8-11)
8 그런데 전에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본디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을 하였지만,
9 지금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무력하고 천하고 유치한 교훈으로 되돌아가서, 또다시 그것들에게 종노릇 하려고 합니까?
10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지키고 있으니,
11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염려됩니다.
<말씀묵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신분은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아버지의 모든 재산은 아들이 상속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어릴 때는 후견인이나 청지기의 관리를 받습니다. 바울은 이를 통해 하나님 백성과 율법의 관계를 연결시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이 세상의 유치한 교훈’ 곧 율법 아래에 있었습니다(3절; 3:25). 때가 되자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에 있던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4~5절). 또한 아들의 영 곧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6절). 우리는 종이 아닌 아들의 신분으로 참 자유와 권세를 누립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나님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분입니다(7절; 롬 8:32).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담대히 행할 일 혹은 피할 일은 무엇인가요?
현재 내가 처한 여건과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 사람과 다르게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말로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실제로 주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면서 그분의 은혜의 강권하심에 의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담대히 행할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롬 12:1)라는 말씀처럼 나의 전부의 주인이 주님이시며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는 것임을 인정하고 사모하고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야 할 담대한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여전이 나의 전부의 주인이 마치 나 자신 인 것처럼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세상의 유치한 교훈으로 돌아가 종노릇하며 지킨 일은 무엇인가요?
아들의 신분을 버리고 종이 되려 한다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일과 연관시킵니다. 이는 절기와 관련된 율법을 지키는 일일 수도 있고,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에게 율법 준수를 강요했던 거짓 교사들의 꾐에 빠지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복음에서 벗어난 갈라디아 성도들의 행위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다시 육체로 마치는 것이며(3:3), 바울의 수고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11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하나님 아들의 자유와 특권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다시 과거로 돌아가 하나님이 아닌 것들 곧 종교 의식이나 율법주의 등에 종노릇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다시 매이면 안 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미련 때문에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솔직하게 우리 옛 사람의 욕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면 적어도 옛 사람의 욕망이 나를 계속해서 지배하게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더라도 우리의 아픈 기억과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를 향한 주님의 자비와 사랑이 그 아픈 기억과 상처보다 훨씬 더 크심을 경험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로 더 이상 우리의 부정적인 생각이나 옛 사람의 욕망이나 생각과 상처에 매이지 않게 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누구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는 내가 누구인가를 보는 것로 바뀌었습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것은 없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세상의 우상을 좇다가 믿음이 희미해지고, 율법에 매여 자유를 상실한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십자가 피로 값 주고 사셔서 하나님 자녀로 삼으셨으니,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로 살게 하소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일상에서 깊은 친밀감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