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하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준엄한 경고(마 23:13-24)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은 교인들을 어떤 길로 이끌었나요?
책임과 의무를 잘 감당하지 못한 지도자에게는 주님의 준엄한 책망이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은 백성은 하나님께로 인도할 영적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스스로도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합당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교인을 그들보다 더한 지옥 자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행한다며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닮은 그들의 복제품이 형편없었습니다. 이로써 그들 삶의 실체가 어떠한지 명백히 알수 있었습니다. 진실하게 하늘 나라 백성다운 삶을 사는 지도자라면, 그의 영향을 받는 사람 또는 하늘 나라 백성으로 변화됩니다.
나를 본받는 이들에게 나는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나요?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가지고 오셨으며 하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의 백성들로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미래에 실질적으로 완성되는 나라를 말합니다. 하늘 나라의 문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을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이 여부에 따라서 내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악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가 십일조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도는 그릇된 판단으로 말씀을 왜곡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은 성전이나 제단을 두고 맹세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제물을 두고 한 맹세는 반드시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금보다 성전이 크고 제물보다 제단이 크다 하시며, 맹세의 대상보다 중요한 것은 맹세를 들으시는 하나님임을 강조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일조를 드리되 더 중요한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소한 것(하루살이)에 집착하다가 더 중요한 것(낙타)을 소홀히 하는, 걸러 낸 순종과 실천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외형적 율법 준수가 아니라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다가 큰 것을 놓친 일은 없는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목적과는 거리가 먼 사소한 것에 집착하다가 큰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와 금식과 구제와 십일조 등과 같은 신앙생활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의 본질인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우리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목적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의 말씀에 다스림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신앙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끼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보는 이들이 주님의 선하심과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살아계셔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우리를 통하여 드러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사소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소서.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고 그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