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삼상 26:1-12)
십 광야로 온 사울(삼상 26:1-7)
1 십 광야의 주민이 기브아로 사울을 찾아와서 밀고하였다. "다윗은 여시몬 맞은쪽 하길라 산 속에 숨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2 그래서 사울이 일어나, 이스라엘에서 삼천 명을 골라 거느리고, 십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으러 직접 십 광야로 내려갔다.
3 사울은 여시몬 맞은쪽 하길라 산 속으로 들어가 길 가에 진을 쳤다. 이 때에 다윗은 바로 그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사울이 자기를 잡으려고 그 광야로 쫓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4 다윗은 곧 정찰대원들을 파견하여, 사울이 와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를 확인하게 한 다음에,
5 사울이 진을 친 곳으로 가 보았다. 다윗이 그 곳에 와 보니, 사울과 넬의 아들 아브넬 군사령관이 자고 있었는데, 사울은 진의 한가운데서 자고, 그의 둘레에는 군인들이 사방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6 그래서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인 아비새에게, 누가 자기와 함께 사울의 진으로 내려가겠느냐고 물으니, 아비새가 나서서, 자기가 다윗과 함께 내려가겠다고 대답하였다.
7 이리하여 다윗이 아비새를 데리고 밤에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니, 사울이 진의 한가운데서 누워 자고, 그의 머리맡에는 그의 창이 땅바닥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군인들은 그의 둘레에 사방으로 누워 있었다.
사울을 살려 준 다윗(삼상 26:8-12)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자청하였다. "하나님이 오늘, 이 원수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제가 그를 당장 창으로 찔러 땅바닥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한 번이면 됩니다."
9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에게 타일렀다.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든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자를 죽였다가는 벌을 면하지 못한다."
10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주님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되어서 죽든지, 또는 전쟁에 나갔다가 죽든지 할 것이다.
11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이를 내가 쳐서 죽이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을 들고 아비새와 함께 빠져 나왔으나, 보는 사람도 없고, 눈치채는 사람도 없고, 깨는 사람도 없었다. 주님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그들이 모두 곤하게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묵상>
다시 시작된 사울의 추적에 다윗은 어떻게 대응했나요?
어리석은 자의 약속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다윗을 '내 아들'(24:16)이라 부르며 용서를 구하던 사울의 모습은 일시적이었을 뿐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다시 십 광야로 갑니다. 다윗은 정탐꾼을 통해 사울의 동태를 파악하는 등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합니다. 사울의 진을 관찰하던 다윗은 아비새만 데리고 사울의 진영 안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요나단이 병사 한 명만 데리고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한밤중이라 할지라도 3,000명의 군사와 보초들로 둘러싸인 진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행동합니다.
내가 담대히 믿음으로 직면해 해결할 일은 무엇인가요?
믿음에는 사건을 해석하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보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해석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져야 하는 관점은 하나님의 시각과 우리의 시각입니다. 사건과 문제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에만 집중하여 보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항상 뒷전에 밀려나기 때문에 문제 가운데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겪게 됩니다. 문제를 중심으로 삶을 보면 믿음으로부터 떠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른바 문제는 문제이고 믿음은 믿음으로 분리되고 맙니다. 동일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느냐에 다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모든 환경을 주관하시고 환경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의 창과 물병만 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울은 많은 군대와 부하에 둘러싸여 진영 한가운데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안전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비새는 하나님이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기셨다며, 자신이 단번에 죽이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은 이번에도 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이는 것은 죄며, 하나님이 친히 사울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나발의 죽음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는데, 창은 사울의 생명이 다윗의 손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무사히 사울의 진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울과 모든 군대를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원수에게 복수하고 싶을 때 내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 말씀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역할을 내가 맡아 마땅히 벌 받아야 할 자를 처벌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순수한 동기로 복수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모세의 율법에서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레 19:18)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다윗은 일방적으로 사울에게 괴롭힘을 당한 결백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에 대한 복수하기를 거절했습니다. 다윗은 복수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명령에 복종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복수를 맡기고 구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인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 5:44)를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잘못을 인정했던 원수가 동일한 모습으로 다시 공격해 올 때, 인간에 대한 실망이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게 하소서. 반복되는 공격에 감정이 상해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