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예배를 위한 아낌없는 헌신(느 7:61-73)
출신을 알 수 없는 사람들(느 7:61-66)
61 이 밖에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 등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왔지만, 가문이 밝혀지지 않아서, 그들이 이스라엘의 자손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다.
62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인데, 모두 육백사십이 명이다.
63 제사장 가문 가운데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도 있는데, 이들 가운데서 바르실래는 길르앗 지방 사람인 바르실래 집안으로 장가를 들어서, 장인의 이름을 이어받은 사람이다.
64 족보를 뒤져보았지만, 그들은 그 조상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제사장 직분을 맡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 직분을 맡지 못하게 하였다.
65 유다 총독은 그들에게,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판결을 내릴 제사장이 나타날 때까지는, 가장 거룩한 음식은 먹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66 돌아온 회중의 수는 모두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다.
귀환자들이 가져온 재물(느 7:67-73)
67 그들이 부리던 남녀 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그 밖에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사십오 명이다.
68 또 말이 칠백삼십육 마리요, 노새가 이백사십오 마리요,
69 낙타가 사백삼십오 마리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 마리이다.
70 가문의 우두머리 가운데는 건축 기금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총독도 금 천 다릭과 쟁반 오십 개와 제사장 예복 오백삼십 벌을 창고에 들여놓았다.
71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공사를 위하여 창고에 바친 것은, 금이 이만 다릭이요, 은이 이천이백 마네였다.
72 나머지 백성이 바친 것은, 금이 이만 다릭이요, 은이 이천 마네요, 제사장의 예복이 육십칠 벌이다.
73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백성 가운데 일부와 성전 막일꾼들과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에 자리를 잡았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렇게 여러 마을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 일곱째 달이 되었을 때에,
<말씀묵상>
귀환자 중에서 제사장 계보를 엄격하게 파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귀환자 중에는 출신을 알 수 없는 이도 있습니다. 61~62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일반 백성 중 출신 지역이나 가문을 알 수 없는 이들로, 바벨론 포로지에서 온 것은 분명하지만 이스라엘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명단에 들어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다만 제사장의 경우는 반드시 레위 지파의 제사장 가문 사람이어야 하기에 계보를 엄격히 확인했습니다. 제사장 계보에 이름이 없는 사람이나(64절) 혈통과 무관하게 결혼해서 계보에 들어간 사람은(63절) 제사장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대로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내가 기준을 낮추면 안 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난 주일 당신은 예배에 참석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지만, "그 예배 모임 가운데서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기 쉽지 않습니다. 모든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단 이상 예배하지 않는 교회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며, 그의 백성들은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늘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삶의 중심이 되셨으며, 하나님 안에서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 되어 살아가는 그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귀환자들이 많은 재물을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귀환자들은 재물도 가져오고 노비도 데려옵니다. '노래하는 남'(67절)는 찬양대가 아니라 노래하고 춤추며 오락거리를 제공하던 이들로 봅니다. 말, 노새, 낙타, 나귀 등은 재물을 운반하는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가축 수가 많은 것은 귀환자들이 상당히 많은 재물을 가지고 왔음을 보여 줍니다(68~69절). ‘보물 곳간'과 '역사 곳간'은 성전을 짓기 위해 재물을 모아 놓는 창고를 가리킵니다(70~71절). 하나님은 포로 생활 속에서도 그분 백성의 삶을 지키시고, 일부는 부유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짓거나 성전을 유지하는 데 자신의 재물을 기꺼이 헌납했습니다. 신앙 공동체 회복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기꺼이 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로 주신 재물을 어떤 일에 사용해야 보람될까요?
재물 자체가 죄악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수단으로 주신 그 재물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지 못하고 내가 주인이 되어 “내가 다 벌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탐욕이 생겨서 적절하게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감사도 하지 않고,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보답하지 못하는 거싱 죄악입니다. 누가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만 의지하다가 참 안식이 되시는 하나님을 애석하게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늘 깨달아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재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영광돌리는 일에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계보를 알 수 없는 사람 같았던 저를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도록 저를 부르셨으니, 주신 직분에 합당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감사하며 순종으로 화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