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신뢰로 얻는 두려움 없는 평안(시 3:1-8)
대적이 둘러싸고 치는 가운데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나요?
기도는 신뢰에 기초합니다. 시편 기자는 위협 속에서도 무한한 신뢰로 '주님'(1절)이라고 부릅니다. 이 짧은 부름에는 제물이나 고행이나 정성으로 신을 감동시키려는 기도보다 더 큰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수많은 대적에게 둘러싸인 당혹스러운 상황을 '어찌'와 '많다'(3회)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1-2절). 대적들은 그의 절망적인 상황을 하나님조차 구원할 수 없다며 조롱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방패요 영예를 찾아 주시는 분이요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해 무한한 신뢰를 갖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이 시편 3편의 부제는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입니다. 아들 압살롬을 비롯하여 믿었던 사람들이 다윗을 대적하여 반역했습니다. 단순한 고난이 아닙니다. 인간관계의 신뢰가 무너진 아픔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지켜야 합니까? 사실 이 시편은 다윗이 어떻게 마음을 지키고 평안을 회복했는지를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은 방패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방패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대적을 막아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영광이십니다.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그들의 조롱과 반역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나의 영광을 회복시켜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무죄를 선포하고 나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 즉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을 향해 무한한 신뢰를 갖는 근거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시편 기자의 신뢰는 어느 정도인가요?
사람은 대개 조금이라도 불안한 상황에 처하면 근심 걱정에 싸여 잠을 이루지 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수많은 대적이 에워싼 상황에서도 눕고 자고 깨어나는 평안함을 누립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그는 천만대군이 자기를 둘러싸고 위협해도 조금도 두렵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붙들어 주심을 굳게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시편 기자의 신뢰는 자신의 기도가 이미 응답되었다는 확신에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니 그분이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기자의 온전한 신뢰와 평안한 삶은 자신을 위한 기도에서 온 백성을 위한 기도로 나아가게 합니다.
평안히 눕고 자고 깨어나는 삶은 결국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나를 붙드신다는 확신때문입니다. 밤새 온갖 괴로움으로 긴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것은 평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어려운 상황에서 누워 자고 깨었다고 고백합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깊은 잠을 잤다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여러가지 상처와 고난과 어려움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만나는 수많은 실망과 좌절, 고난과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인생 최대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괴로울 때는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때입니다. 우리의 방패이시며 우리의 영광이시며 우리의 머리를 들어 주시는 주님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입니다. 그 주님 때문에 천만대군이 나를 공격하고 미워하고 이유 없는 증오를 퍼부을 때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주님! 내가 주님을 바라봄 소리 높여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응답하시는 주님! 천만대군이 나를 둘러싸도 나를 구원하시는 주님!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봄으로 평안을 누리며 회복을 소망하기를 원합니다. 신실하신 주님을 의지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