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긍휼 사역과 상반된 반응(마 9:27-38)
눈먼 두 사람과 무리,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가요?
동일 사건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간청했던 눈 먼 두 사람,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의 치유를 본 무리,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각기 다릅니다. 예수님을 통해 보게 된 눈 먼 두 사람은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당부하셨음에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많은 사람에게 전합니다. 귀신 들려 말 못하던 자가 나은 것을 본 무리는 기이히 여기며 놀랍니다. 반면에 같은 사건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힘을 빌려서 이같은 일을 한다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을 보고 찬양하며 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훼방하고 대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일하심에 믿음으로, 순종으로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자비를 경험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요즘 온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신체적, 관계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고통의 깊이와 무게를 체감해 본 사람이라면 안전하고 효과가 좋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나왔다는 소식을 오직 자기 자신 혼자만 몰래 알고 있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그 어떤 인간도 찾지 못했던 인간의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았다면 그 누가 잠자코 혼자 있겠습니까!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자비를 경험할 때 우리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우리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 놀라운 일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다면 아무 할 말이 없겠지만 보고 듣고 경험했다면 오늘 눈 멀었다 보게 된 두 사람처럼 예수님이 행하신 구원을 마땅히 만나는 사람마다 말하게 될 것입니다.
'목자 없는 양'같은 무리를 보시며 예수님은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성도는 예수님이 사람을 보시는 관점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신 이유는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많은 사람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경제적 가난과 영적 곤고함 가운데 살고 있는 많은 무리를 보셨습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연약한 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해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성도에게 있습니다. 긍휼의 눈으로 사람들을 볼 때 비로소 그들에게 꼭 필요한 구원이 보입니다.
추수하는 일꾼으로서 내가 참목자이신 예수님께 이끌 사람은 누구인가요?
누가 우리의 진짜 적입니까? 사람들의 배후에서 그들을 유혹하고 위협하여 이 세상을 어둠으로 끌고가는 진짜 적이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그는 고발자 혹은 훼방자로 불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막고 사람들이 거룩해지고 올바로 서서 현재의 비참한 고통에서 출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어둠의 세력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사탄과 한 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보내신 추수하는 일꾼들을 향해서도 동일하게 주장하며 핍박할 것입니다. 이러한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들을 바라보신 관점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또 추수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밀밭과 같이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자를 기다렸지만 구원자에게로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누가 보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추수하는 일꾼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구원과 생명과 자비와 능력이 되시는 주 예수님을 기뻐합니다. 찬양합니다. 온 세상에 크게 외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눈을 들어 주위를 보며 사람들을 보게 하소서.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보게 하소서. 목자 없는 양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 추수하는 밭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마음에 주님의 마음을 부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