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추락의 실상, 동족 진멸 전쟁(삿 20:29-48)
세 번째 전투는 아이성 전투와 어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나요?(수 8:3-7)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승리를 약속받은 이스라엘 연합군은 전면전 대신 '매복'했다가 '유인'해 '협공'하는 새로운 작전을 펼칩니다. 이는 여호수아 시대 아이성 전투를 떠올리게 합니다. 문제는 전투의 대상이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동족 베냐민 지파라는 것입니다. 이 작전으로 이스라엘은 2만 명이 넘는 베냐민 용사를 쓰러뜨립니다. 본문은 이것을 베냐민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로 설명합니다(35절). 처음 두 번의 전투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다면, 세 번째 전투에서는 베냐민을 징계하십니다. 표면상으로는 연합군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승리의 기쁨과 영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서로 죽고 죽이며 동족상잔에 이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하나님 안에서 살도록, 하나님을 위해서 살도록 지으셨다는 뜻입니다(골 1:16-17).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언제부터 이 땅에 존재하여 살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기로 생각하셨을때부터 그리고 그분이 인간을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사람이 되게 하셔서 사람이 되게 하셨을 때부터 인간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생각이 능력이 붙드심이 우리를 살아 움직이고 존재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살수 있다는 생각자체가 사실은 어리석기 그지 없는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죽습니다.
이스라엘은 패배한 베냐민 백성과 성읍에 어떻게 행했나요?(48절)
바른 질문에서 바른 답이 나옵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패한 이스라엘 연합군은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전투에 임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패해 18,000명이 죽습니다(25절). 이에 이스라엘은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 통곡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세 번째로 물을 때는 베냐민 지파와 싸울지 말지를 묻습니다(28절). 이는 이스라엘이 동족 간의 싸움을 그만 둘 의향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스라엘은 싸움의 선봉을 묻는(20:18) 대신, 이 싸움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먼저 물었어야 했습니다. 내가 먼저 결정하고 하나님께 묻는 것은 올바른 순서가 아닙니다. '결정'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는 악과 싸우기보다 '사랑하고 품어야 할 사람'과 싸우지 않는지 돌아보세요.
진리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인간이 진리를 알지 못할 때 남의 다리를 긁으면서 왜 내 다리가 시원하지 않은지 궁금해하고 답답해하고 절망합니다. 진리는 현재 우리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보여 줍니다. 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진리인 예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으면,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요 8:31-32).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중의 하나가 인간관계의 문제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품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진리로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나와 그 상대를 위해서 어떤 마음이고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진리를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집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억압하던 것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내가 악과 싸우기보다 사랑하고 품어야 할 사람과 싸우고 있다면 성령님께 진리로 나를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주님으로 말미암아서 주님 안에서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능력이 우리를 살게 하심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진리로 우리를 자유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