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자녀를 세우는 해산의 수고(갈 4:12-20)
바울을 환대한 성도들(갈 4:12-15)
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내게 해를 입힌 일은 없습니다.
13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14 그리고 내 몸에는 여러분에게 시험이 될 만한 것이 있는데도, 여러분은 나를 멸시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15 그런데 여러분의 그 감격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만 있었다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서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수고(갈 4:16-20)
16 그런데 내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원수가 되었습니까?
17 위에서 내가 말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내게서 떼어놓아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자기네들을 열심히 따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8 그런데 그들이 좋은 뜻으로 여러분에게 열심을 낸다면,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좋은 일입니다.
19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20 이제라도 내가 여러분을 만나 어조를 부드럽게 바꾸어서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하고 있습니다.
<말씀묵상>
거짓 교사들이 오기 전까지 바울과 갈라디아 성도들의 관계는 어떠했나요?
바울의 권면은 신뢰 관계에 기초합니다. 바울은 ‘육체의 약함’ 때문에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말합니다(13절). 육체의 약함은 고린도후서에 언급된 ‘육체의 가시’로 볼 수 있는데(고후 12:7), 이는 눈과 연관된 질환(15절)이거나 뇌전증(간질) 혹은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으로 보기도 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은 육체의 약함으로 인해 시험거리가 될 정도였음에도 성도들은 바울을 업신여기지 않고 영적 부모인 그를 하나님의 천사처럼 영접했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관계는 복음을 전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의 환대는 사역자가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하는 큰 힘이고, 그 결과 성도는 복음의 진리 안에서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역자를 존중하고 환대하는 일은 내 신앙에 어떤 유익을 주나요?
교회를 위해 일하면 교회의 신비에 참여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면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합니다. 사역자는 모두 교회의 일꾼이고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섬기는 사역을 서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님은 모든 신자들을 그분의 몸의지체로 삼으셔서 서로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다른 지체들의 섬김이 필요없는 사람도 없고 다른 지체를 섬길 수 있는 은사가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도 섬기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격려하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더욱 세워져가고 자라가는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에게 열심을 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성도는 참된 사역자를 분별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바르게 이끌기 위해 생명을 다해 수고했지만, 거짓 교사들은 성도들을 바울과 이간해 자신들을 추종하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결국 거짓 교사들에게 현혹된 성도들과 바울의 관계가 소원해졌습니다. 바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성도들을 다시 복음 위에 세우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해산의 수고에는 율법에 종노릇하려는 이들에게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참된 말을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사역자와 성도는 영적 부모와 자녀 관계입니다. 어려움을 겪더라도, 넘어진 성도를 일으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애쓰는 사역자가 진정한 사역자입니다.
내가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감당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더 쉬워 보입니다. 더 좋게 느껴집니다. 더 익숙하고 더 안전하고 또 다른 수고가 필요 없어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할 필요 없이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내가 잘 하면 되고 내 뜻대로 내 능력에 따라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옛 습관을 따라 살며 더 나은 변화를 위한 수고를 미루어둡니다. 우리의 목표를 잊어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과거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죄와 죽음과 사탄의 종이었습니다. 텅빈 거짓말에 속아 살았습니다. 터진 웅덩이에 끊임없이 물을 부었습니다. 옛날로 돌아가려는 이들을, 뒤로 물러서려는 이들을 함께 붙들고 일으켜 세우는 주님의 해산의 수고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의 사역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공동체를 위한 제 열심과 수고가 누구를 향하는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제 사람을 만들거나 제 만족을 위해서라면 멈추게 하시고, 복음을 드러내고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라면 더 힘을 쏟게 하소서. 지체의 연약함은 덮어 주고 잘함은 칭찬하며 주님의 형상을 이루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