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면류관이 예비된 겸손과 순종(벧전 5:1-7)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권면한 것은 무엇인가요?
교회 지도자의 자리는 섬기는 자리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장로'는 성도를 목양하던 사역자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이들의 올바른 사역 자세에 대해 권면합니다. 장로 된 자들은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를 섬겨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마음은 열정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좇아 사역해서도 안 됩니다. 개인의 이익이 목적이 되면 사역은 본래 의미를 잃습니다. 순수한 봉사의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권력을 행사하듯 지배하려 하지 말고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모든 섬김을 다한 후에 지도자가 바랄 것은 사람의 인정과 상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믿음의 본을 보일 때 교회와 성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예수님은 어리석어서,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붙잡히시고,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시고, 조롱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 땅에서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힘이 없으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이 무서워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주 자신에게는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을 이 땅에서의 삶의 이유와 기쁨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믿음의 본을 보인다는 것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척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예수님 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나의 양식이 될때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말려도 기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건 보지 않건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고 따르는 것을 인생 최고의 기쁨으로 여길 것입니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자체가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당연한 삶이기에 그렇게 살 것입니다.
베드로가 젊은이들에게 겸손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든 성도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젊은이'는 장차 교회의 '장로'가 될 사람들입니다. 젊음의 때에는 언젠가 지도자의 자리에서 교회를 섬기기 위해 자신을 훈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적 지도자에게 순종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얻습니다. 잘못된 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의견이 다르더라도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을 싫어하시며 겸손한 사람을 높이신다는 것은 성경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교훈입니다(잠 29:23; 약 4:6). 또한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맡기다'(헬, 에피립토)라는 말은 '던지다'라는 뜻입니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던지면, 주님이 받으십니다. 우리 삶을 돌보시는 하나님께 우리 모든 것을 의탁해야 합니다.
현재 내가 꼭 움켜쥐고 있는 염려거리 중 주님께 맡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염려거리가 있느냐 없느냐가 우리의 주 관심사가 아닙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이 세상에 염려거리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로 부유하면 부유한대로, 몸이 아프면 몸이 아픈대로 몸이 건강하면 몸이 건강한대로 사람마다 염려거리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 땅의 한계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이 몸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염려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염려거리가 아니라 우리를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우리의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 "예수 임마누엘"께서 우리에게 계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그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며, 순종할 때 더 이상 염려거리는 우리에게 염려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이 누구에게 보이려는 위선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고, 기쁨이 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어떤 염려거리도 우리의 함께 계시는 주님 앞에서 더 이상 염려거리가 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