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에 근거한 간구, 진노를 돌이키신 하나님(출 32:1-14)
시내산 언약 체결 직후 벌어진 금송아지 사건은 어떤 면에서 심각한 문제였나요?
시내산 언약을 하나님과의 영적 결혼이라고 할때(19-24장) 금송아지 사건은 영적 간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이 심각한 이유는 첫째, 시내산 언약 체결 직후,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 건설에 대한 명령을 주시는 중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시기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결혼식 직후에 하나님의 신부 이스라엘이 간음을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이를 '신'(하나님. 4절)이라고 선언한 것은 시내산 언약의 핵심인 십계명의 첫번째, 두 번째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셋째, 금송아지를 기념하는 의식(5-6절)이 시내산 언약 기념 의식(24:3-11)과 거의 슷합니다. 마치 신부 이스라엘이 간음 상대와 결혼 피로연을 다시 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내가 영적 간음으로 여기고 민감하게 반응할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의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외아들까지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 역시 이런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향한다면 그것은 영적간음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세상을 사랑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세상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선과 악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이유와 같습니다. 선을 사랑하면, 악은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을 사랑함은, 그 안에 선을 사랑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빛이 임하면, 그 곳에 있던 어두움은, 절로 사라집니다. 반대로 어두움이 있으면, 그 곳에는 빛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어떻게 평가하셨나요?
구원의 주권자를 모르는 것은 실로 어리석습니다. 백성은 금송아지를 두고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8절)이라 합니다. 이 문구는 20장 2절에서 하나님이 십계명의 서론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금송아지와 언약식을 치르면서 구약의 가장 중요한 구원 사건을 우상의 공로로 돌려 버립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 백성'(3:7, 10 등)이라 하지 않고 '네 백성'(7절)이라 하시며 관계 단절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백성을 진멸하고 모세를 새 아브라함으로 불러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모세의 중보기도(11-13절)와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백성을 진멸의 위기에게 구해 냅니다.
모세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중보 기도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진노를 온 몸으로 막아서며 중보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모습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해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그 무시무시한 진노를 홀로 짊어지신 바로 그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의 금송아지 사건은 에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에 만든 온 인류의 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죽음의 자리까지 몰아간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세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중보 기도할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가슴을 찢고 애통하며 상한 심령으로 울부짖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돌이켜야 할 대상이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의 가슴에 새기게 하소서. 오직 주님만이 생명이고 전부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오직 주님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단 하루도 살수 없고 또 살기를 원하지 않는 주님의 신부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