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염소를 가르는 기준, 주님께 하듯 사랑하는 삶(마 25:31-46)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께 복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영광 중에 재림하시고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심판주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민족을 오른편 양과 왼편 염소로 구분하시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40절)로 불리는 제자와 성도를 대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은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복을 선언하십니다. 비록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이 주리고 목마를 때, 병들고 헐벗을 때, 그리고 그 외에 여러 힘든 상황에서 사랑과 친절을 베풀었고, 주님은 이를 그분께 행한 일로 기억해 주셨습니다. 이로써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 창세로부터 예비된 천국을 상속받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한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내가 돌아볼 한 사람은 누구며, 어떻게 도울까요?
나와 모든 타인과의 모든 관계는 나와 주님과의 관계와 반드시 연결되어져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극히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반드시 내가 주님을 대하는 마음을 반영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가운데 지음받은 사람을 나의 생각으로 지극히 보잘 것 없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을 지극히 보잘 것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됩니다. 주님은 나의 중심을 보십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돌보며 섬길 때 주님은 나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다!"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이 저주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대개 어떤 일을 '하지 않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에 예수님은 쐐기를 박으십니다. 예수님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주님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45절)을 그분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십니다. 곤경에 처한 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며 무정하고 무관심한 것은 완악함이요 말세에 나타나는 징조입니다. 이로써 왼편에 있는 자들은 악마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에 던져집니다. 주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이들의 곤경을 못 본척하는 것은 이웃 사랑의 율법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무정함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일은 무엇이며, 사랑의 계명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요즘 들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폭력적인 살인에 의한 피해자들을 하나의 충격적인 뉴스거리로 여기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섬기고 돌보라고 주신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주님의 마음으로 슬퍼하며 그 유가족과 지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돌봐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왜 범인들이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이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그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여느 가족이나 친구 같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우리는 이런 폭력적인 살인 사건이 더 자주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이 지으신 존귀한 존재로 회복되도록 함께 도와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신 것을 믿습니다. 이 땅의 모든 인간은 주님이 존귀하게 지으신 피조물인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점으로 사람을 판단하여 그들이 받을 대우를 결정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관점에 따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며 섬기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목숨을 빼앗는 악한 일들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뜻으로 맞서 싸우게 하소서. 주님의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