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은 주님의 명령으로 시작되고 성취됩니다(렘 47:1-7)
블레셋의 멸망 예언이 예레미야에게 언제 임했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됩니다.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블레셋을 심판하시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암 1:6). 블레셋은 사납고 잔인하며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괴롭힌 민족입니다. 블레셋은 북에서 홍수처럼 휩쓸고 오는 군대에 의해 순식간에 전멸할 것입니다. 블레셋뿐 아니라 동맹국 두로와 시돈의 지원군, 크레타 섬에 남은 블레셋 사람까지 다 멸망할 것입니다. 블레셋의 멸망은 이집트 왕이 블레셋의 가사를 침공하기 전에 예언되었기에, 블레셋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블레셋은 주전 604년경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의 군대에 멸망당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는 민족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 돌이킬 행동은 무엇인가요?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의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는 것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소원을 가장 잘 들어주는 편리한 도구로서의 신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일방적인 소원만을 들어주는 자신만을 위한 그러한 신이 우상입니다. 마술램프의 지니처럼 언제든지 나의 소원만 들어주고 사라져 주는 신이 우상입니다. 하지만 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아가페 사랑과 공의의 정신에 따라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돌보시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성취해주는 우상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인격체이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만드셔서 서로 사랑하고 친밀하게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상 대하듯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마음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한 두려운 고난에 어떻게 반응하나요?
하나님이 심판의 칼을 휘두르시면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블레셋은 처참하게 멸망할 것입니다. 가사와 아스글론은 블레셋의 5대 도시에 속합니다. 머리를 민다는 것은 블레셋의 수치와 황량한 모습을 극명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극도의 슬픔 가운데 자기 몸에 상처를 내면서 그들 신에게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신적 자학 행위는 심판의 칼날 앞에서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명령하셨기에 블레셋은 '주님의 칼'에 의해 철저히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가 성취되기까지 심판의 칼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명령 아래 시작되고 성취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기에 겪는 고난임을 인정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게 되었다면 그 고난은 그 사람에게 오히려 유익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명령하신 고난을 겪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뜻대로, 세상의 다른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그 사람에게 그 고난은 심판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마땅하게 여겨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달아지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솟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선물인 성령하나님 덕분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말씀을 들을 때 진리로 인도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새 언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누리는 놀라운 복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에 매여 우상을 섬기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찾아와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주님안으로 이끌어 주셔서 친밀하게 교제하며 기쁘게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귀가 세상의 말에 따라가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따라가게 하소서. 새 언약의 신대를 살아가는 복을 귀하게 여기며 매일 주님의 말씀 듣기를 기뻐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