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신 주권자의 자유롭고 은혜로운 선택(롬 9:14-24)
하나님이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선택이 공평한지 물음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 편에서의 물음일 뿐 주권자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심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3:23) 하나님은 그분의 기쁘신 뜻을 따라 구원받을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이 의롭거나, 간절히 구원을 바라거나, 구원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긍휼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마음이 강퍅해 그분 뜻을 거부하는 자에게도 역사합니다. 순종하고자 하는 바로를 하나님이 억지로 완고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완고한 대로 그의 마음을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출 7:3; 8:32). 하나님의 선택은 항상 선하시며 불의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서 내가 누리는 긍휼과 은혜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 자녀 삼으신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아래서 우리가 누리는 긍휼과 은혜는 우리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그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일 뿐입니다.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의 긍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향합니다. 우리가 불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적은 긍휼과 은혜에 대해 우리는 시편 8:4절의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 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을 통해 하나님의 어떤 면이 강조되나요?
하나님이 자유로운 결정은 선하신 주권에 따른 것입니다.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과 편하게 쓸 그릇을 만든다 할지라도, 만들어진 물건이 토기장이에게 자신의 권리 주장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토기장이가 만든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에는 그의 의도와 목적이 드러납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과 구원받은 자들을 통해 그분의 공의와 자비를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긍휼의 그릇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됩니다. 이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영광을 잘 보여줍니다.
긍휼의 그릇으로 은혜 입은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 역사의 모든 줄기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왜 하나님은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바울은 다시금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그의 피조물 된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신앙의 태도입니다. 바로를 강퍅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갖가지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즉각적인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항상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인내하시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긍휼의 대상이 되어지는 것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이나, 혹은 말할 수 없는 궁핍의 상태에 빠진 자에게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절대주권 이듯이 긍휼하심을 입는 것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아래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긍휼의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드러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상식과 논리대로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옮으심을 의심하고 불평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쓰시는 긍휼의 그릇으로 빚어주심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