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믿음을 권면하고 순종을 실천하는 공동체(히 3:12-19)
매일 서로 권면할 이유(히 3:12-14)
12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여러분은 조심하십시오.
13 '오늘'이라고 하는 그날그날,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14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 안식(히 3:15-19)
15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반역하던 때와 같이 너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하는 말씀이 있는데, / ㉣시 95:7; 8
16 듣고서도 하나님께 반역한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 모두가 아니었습니까?
17 하나님께서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진노하셨습니까? 죄를 짓고, 시체가 되어서 광야에 쓰러진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18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습니까?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19 결국, 그들이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믿지 않았기 때문임을 우리는 압니다.
<말씀묵상>
사람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말씀에 대한 '불신'과 '거역'은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합니다. 성도는 이러한 영적 표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과거만의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조심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일입니다. 공동체 안에 그와 같은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매일 서로를 격려하고 권면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처음 믿을 때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는 순간, 믿음은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처음 믿음을 '끝까지' 간직하는 성도는 마지막 날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나와 지체들이 하나님 안에 거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해야 하나요?
성경은 사람을 양에 비유합니다. 양의 특징은 눈이 좋지 않아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따라 가는 것입니다. 양이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목자의 음성에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양과 같은 우리들은 눈앞의 힘든 상황앞에 두려움에 뒤걸음치기도 하고, 눈앞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까지한 상황앞에 이끌려 곁길로 빠지기도 합니다. 이때 나와 지체들이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동역은 바로 오늘 묵상한 주님의 말씀, 오늘 들은 주님의 음성을 지체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귀한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벧후 1:4). 우리는 지체들의 귀에 항상 주님의 약속을 들려주어 그들이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동역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완고함은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했나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다시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출애굽이라는 은혜를 경험하고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받고도 40년간 계속해서 불신과 불순종으로 행했습니다. 그들의 지속된 불순종과 완고함은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했고, 그들의 시신은 광야를 덮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누릴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15-18절). 이 땅에서 사는 성도는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입니다. 참된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받고 순종해야 합니다. 불신은 불순종으로,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 약속은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성취됩니다.
내가 완고함을 버리고 믿음으로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라는 안전장치를 벗어나는 것이 참으로 쉽지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듣고 믿어서 주님을 따르다가도 나 자신이 경험한 사실과 맞지 않는 주님의 약속 앞에서 순종하여 발을 내딛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안전하고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약속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경험에 의지하여 누리는 안정감과 안식은 '내일'이라는 미래앞에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내가 내일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이런 나의 경험이라는 완고함 가운데 머물러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그분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심을 가르쳐 주시며 우리의 경험이 아닌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으라고 초청하십니다.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안에서 우리는 그 어떤 상황도, 그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는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죄를 거부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때로는 힘겹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약속의 말씀을 다시 붙잡고 즐거이 따름으로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오늘'을 살게 하소서. 지속적으로 말씀 안에서 교제를 나누고 서로 권면해 죄의 유혹에 지지 않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