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추구하며 사랑을 남기는 성도(고전 13:8-13)
'온전한 것이 올 때‘(10절)란 언제인가요?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이 영원한 것과 대조적으로 예언과 방언과 지식은 한시적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깨닫고 말하는 것은 모두 온전하지 않습니다. 부분적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은사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10절)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를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영원한 것, 즉 사랑만 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부분적인 은사는 온전한 사랑에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은사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 자랑하거나, 열등감에 빠져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는 사랑만이 영원히 남을 그날을 사모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겸손히 사용하되 항상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사라지게 될 부분적인 은사를 지키려고 사랑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오세요.
고린도교회에 다양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서로 무리를 지어 편을 가르는 분열이 있었고, 성적 타락이 있었고, 무질서한 은사사용이 있었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 되지 못한 분열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하나하나 파헤치고 들어가 보면 ‘사랑 없음’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당을 짓는 것도, 성적 타락도, 은사의 문제도 결국 사랑이 없어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불필요하고 없어질 것을 추구할 것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며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계속 나아갈 것입니까?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고,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으며 우리를 성숙시킵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이 다 사라져도 사랑만은 끝까지 남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벗고 장성한 사람처럼 깨닫게 되는 때는 언제인가요?
바울은 ‘지금’과 ‘그때’를 대조해 설명합니다(11-12절).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 상황인 ‘지금’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깨닫는 것이 더디고 미성숙하며 자기중심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때’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 어린아이의 부족함을 벗어 버릴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구리로 만든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보듯 선명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많이 안다고 교만하거나 잘 모른다고 답답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영원하며, 그중 제일은 사랑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받은 은사로 사랑하며 섬기는 일을 묵묵히 수행해야 합니다.
내 인생 끝까지, 또 예수님 재림 때까지 내가 붙잡을 가치는 무엇인가요?
내가 끝까지 붙잡을 가치는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만은 영원합니다. 그 사랑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남편의 사랑도 아내의 사랑도 식을 때가 있으며 부모의 사랑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사랑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해도 사랑만은 영원합니다. 사랑만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주님께 가는 그 시간까지 이 세상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며 살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많은 은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사랑이 무엇보다도 풍성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