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대화의 시작, 편견 없는 공정성(욥기 32:11-22)
엘리후는 욥 친구들의 어떤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나요?
엘리후의 등장은 대화의 새로운 국면을 기대하게 합니다. 엘리후는 지금까지 욥의 친들이 슬기로운 말로 욥의 말을 논박하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의 말은 실망스러웠고, 욥은 여전히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말을 잃은 친구들을 향해 "내가 이제 욥 어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대답을 들으시도록 하겠습니다."(13절)라는 말로 일침을 가합니다. 그러면서 욥이 아직 자신에게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들과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발언이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차 있습니다.
상대방의 논지가 옳지 않다고 느껴질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나요?
하나님을 알아가는 신앙에 있어서 우리는 누구라도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많이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서 아는 것은 성령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쳐주시고 인도해 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까지 알 수 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까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대해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방의논지가 옳지 않다고 느껴질 때에라도 우리는 무조건 상대방은 틀렸고 내가 맞다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대화하는 가운데 성령하나님께서 나와 상대방 모두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면서 열린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엘리후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다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엘리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분명히 말하겠다고 밝힙니다. "내가"(17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프 아니'는 자신이 말하는 바를 강조하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포도주가 발효되어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인 가죽 부대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참을 만큼 참아서 할 말이 많이 쌓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 논쟁에서 어느 누구 편을 들 생각도 없고 누구에게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할 생각도 없다고 하는데(21절), 이것은 공정하게 말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만약 자신이 약속한 원칙을 지키기 못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이 속히 자신을 데려가실 것이라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치우친 주장은 모래로 쌓아올린 성과 같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때 중요한 것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입니다.
내가 사람의 낯을 보지 않고 공정히 다룰 사안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공정함'이란 하나님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온전히 공정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 속담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람은 자신의 가족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더 위하고 보살피려는 쪽으로 마음이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는 공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공정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라고 질문하면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따라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뜻을 따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사모합니다. 우리가 말할 때 우리가 행동할 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드러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