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시와 천대의 자리에서 무력함으로 이루는 사명(눅 22:63-71)
예수님이 조롱과 멸시를 참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값없이 받은 구원에는 주님이 치르신 값비싼 대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립니다. 그들은 성전 경비대원들이거나 대제사장의 경비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는 때린 자를 알아맞혀 보라고 조롱하며 욕합니다. 이는 하나님 아들에게 행한 ‘신성 모독자’입니다.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조롱과 고통을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실 능력이 있으심에도(마 26:53),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 그분을 때리고 욕하는 자들의 멸시와 천대를 묵묵히 감당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 아들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주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누리는 구원의 은혜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누리는 구원의 은혜는 값없이 주신 것은 맞지만 주님께서 그 구원의 은혜를 내게 베푸시기 위해서 치르신 희생은 너무나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치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합니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고 많은 값을 치르게 되면 그것을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다시 얻기 위해서 치러야할 대가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누리는 구원은 오래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던 일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나를 찾아 오셨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조롱과 모욕과 고통을 당하시고 가장 가치 있는 그분의 생명을 나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희생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신분을 어떠한 말씀으로 드러내셨나요?(69절)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이전부터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했던 자들입니다(29:19; 22:2). 그들은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하나님 아들은 몰라봅니다. 날이 새자 그들이 예수님을 공회로 끌고 가 심문합니다. 공회원들은 예수님이 스스로 답변하게 해서 흠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이제부터 인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게 될 것이오.”(69절)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분의 신분을 드러내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인류 대속의 사명을 성취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 앉아 온 우주를 통치하실 것입니다(빌 2:9-11).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지시고 사람의 심판을 받으시지만, 진정한 심판자는 하나님 아들 예수님입니다.
온 우주의 통치자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에 자신을 내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의 죄로 인하여 이 땅에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죽음은 무자비하게 죄 가운데 있는 모든 인간을 집어 삼킵니다. 그 누구도 죽음의 압제에서 피할 수 없습니다. 온 우주의 통치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죽음의 압제에서 건져내시기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 죽음에 내어 주셨습니다. 친히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치르시고 죽음의 권세를 깨뜨려 버리셨습니다. 이제 예수님 안에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무죄한 자들에게 죽음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합니다. 더 이상 두려움도 아니요, 피할 수 없는 절망도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죽음은 잠깐 잠들었다 깨어나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과정일 뿐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보고 믿을 수 있는 것이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미워하며 주님을 대적합니다.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유케 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기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