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성취한 부활, 부활을 하는 증인(눅 24:1-12)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상기시킨 예수님 말씀은 무엇인가요(7절)?
예수님의 빈 무덤은 부활을 확증합니다. ‘안식 후 첫날’(주일) 새벽에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갑니다. 부활을 예상하지 못한 채, 그들은 단지 사랑하는 예수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 합니다. 도착하니 무덤은 비어 있고, 두 천사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려 줍니다.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대 예수님이 그분의 수난과 부활을 여러 차례 말씀해 주셨는데(9:22; 18:33), 천사들은 그 말씀을 기억해 보라고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그분이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기에 우리는 이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살려 주는 영’(고전 15:45)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부활 신앙을 지닌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죽음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두렵게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죽음은 두려움도, 절망도, 미지의 세계도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이후에 우리가 가야 할 곳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이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분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죽음은 심판과 형벌 받을 때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목소리로 집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때입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자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사랑과 충성으로 끝까지 예수님을 따른 여인들은 부활의 첫 증인이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기억했고,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실을 제자(사도)들에게 알립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믿지 못해 허탄한 말로 듣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더디 믿는 미련한 자들입니다(24:25). 그러나 베드로는 무덤으로 달려갑니다(요 20:3-5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감). 그는 빈 무덤과 시신을 쌌던 삼베를 목격하고 놀랍게 여기며 돌아갑니다. 후일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부활의 증인으로서 맹활약을 펼칩니다. 부활의 증인에게는 복음이 역동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는 ‘부활의 자녀’(20:36)요, ‘부활의 증인’(24:48)입니다.
상식과 이성으로 제한하지 않고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일들 중의 대부분은 상식과 이성으로 판단하여 알고 행할 수 있습니다. 상식과 이성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들입니다. 많은 경우에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식과 이성은 인간된 우리의 한계 안에서 작동하는 것들입니다. 인간된 우리의 한계를 초월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우리의 상식과 이성으로 판단하여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의 상식과 이성으로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부릅니다.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가 상식과 이성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는데 우리의 상식과 이성이 사용되겠지만 그 최종단계에서는 성령님의 조명하심과 주님의 주시는 믿음으로 믿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부활은 새창조의 역사인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상식과 이성의 한계 안에 머물러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불신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한계를 뛰어 넘어 역사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