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반응하는 마음, 순종과 불순종(렘 26:16-24)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고관들은 예레미야의 경고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듣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경고를 듣고 완악하게 반응한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고관들은 양심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예레미야를 죽일만한 이유가 없다면서 오히려 그를 위한 변론을 펼칩니다. 이 당시보다 약 100년 전 히스기야왕 때 미가 예언자도 예루살렘 성전이 우상을 섬기는 산당과 같이 변질되는 것을 지적하고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히 회개로 반응했습니다. 고관들이 제시한 역사의 교훈은 예레미야를 위한 변호였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는 자의 태도에 대한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 앞에 항상 겸손과 순종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사랑으로 듣고 겸손히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거짓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의 잘못된 확신과 예레미야의 확신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역사가 증명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에게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현재를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현재에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에 하나님의 말씀을 덧씌워 내가 바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신앙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신앙이 당시 제사장, 예언자, 모든 백성들의 소망이 투사된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렇게 모양은 하나님이 백성이지만 그 중심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중심은 어떠한지 살펴봅시다.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하고 있는 생각이나 주장이나 뜻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여호야김왕은 우리야 예언자가 전하는 경고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사명자에게는 죽음을 각오하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야도 예레미야와 같은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예언자였습니다. 우리야의 고향인 기랏여아림은 언약궤가 약 20년간 머문 장소였는데, 그곳에서 우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외심도 배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왕은 우리야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권력을 사용해 이집트에 사람을 보내 우리야를 데려와 죽였습니다. 예레미야도 동일한 위기에 처했지만 아히감에 의해 보호를 받습니다. 왕의 손에 죽임당한 우리야도, 아히감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한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신실한 사역자는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가지고 바른길로 권면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위드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더욱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또한 전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그 사람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든지, 돈 많은 부자든지, 명성 있는 목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터진 웅덩이를 통해 생수를 공급받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성실히 터진 웅덩이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이 터진 웅덩이라는 진실을 전할 때 그들은 그 말을 듣기 싫어하고 우리를 미워하여 핍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이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앞에 항복하여 주님의 사랑의 빚진 자가 된 것처럼 우리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전하고 사는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때로는 듣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 앞에 두려운 마음이 들 때 반드시 그 뜻대로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이 앞서 일하고 계심을 봅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우리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을 구원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