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에 드러나는 창조주의 숨결과 능력(창 1:14-23)
가시적 피조물과 비가시적 피조물(창 1:14-19)
14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15 또 하늘 창공에 있는 빛나는 것들은 땅을 환히 비추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6 하나님이 두 큰 빛을 만드시고, 둘 가운데서 큰 빛으로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 별들도 만드셨다.
17 하나님이 빛나는 것들을 하늘 창공에 두시고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창 1:20-23)
20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새들은 땅 위 하늘 창공으로 날아다녀라" 하셨다.
21 하나님이 커다란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는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날개 달린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22 하나님이 이것들에게 복을 베푸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여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하셨다.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말씀묵상>
‘해, 달, 별’ 창조와 더불어 생겨난 것들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넷째 날에 해, 달, 별을 창조하십니다. 이것들이 창조됨으로 계절, 날, 해 등 시간 개념이 생겨납니다(14절). 하나님이 해, 달, 별 같은 가시적인 것을 창조하시자 계절, 날, 해 같은 비가시적인 것이 더불어 창조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나님이 ‘평안과 환난’도 창조하셨다고 기록합니다(사 45:7). 우리가 환난당할 때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듯하지만,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환난’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시적인 것을 넘어 비가시적인 것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새롭게 알게 된 비가시적 창조 세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편 85:10-11절에 보면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교회에서 듣고자 하는 것은 “사랑과 진실과 정의와 평화”라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과 재물과 권력과 명예 같은 실제적인 이득을 원합니다. 이런 가시적인 것들만이 실제적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랑과 진실과 정의와 평화”와 같은 비가시적인 것들이 더 실제적인 것들입니다. 이런 비가시적인 “사랑과 진실과 정의와 평화”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 그것이 존재함을 볼 수 있고 그것의 특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거나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커다란 바다 짐승들’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하나님은 다섯째 날에 바다의 물고기, 하늘을 나는 새를 창조하십니다. 하나님 명령으로 드넓은 바다에는 물고기가 종류대로, 광활한 궁창에는 새가 종류대로 일시에 창조됩니다. 하나님은 바다와 궁창에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게도, 여섯째 날 창조하시는 사람에게와 마찬가지로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번성하여...충만하여라”(22절)라고 선포하십니다. ‘바다 짐승들’(21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탄닌’으로, 이는 ‘용’(시 74:13)이나 ‘악어’(겔 32:2)로도 번역됩니다. 이 바다 짐승들은 고대로부터 강물을 범람하게 하는 두려운 존재로 여겨졌지만, 창세기는 그것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선언하며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들을 잠재우고 세상에 평안을 선물합니다. 성도의 평안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능력의 하나님과 동행하기에 내가 담대할 일은 무엇인가요?
사람은 대개 자신의 앞길이 어떤 길이 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누구와 길을 갈 것인가’입니다. 아무리 힘든 길이라고 해도 좋은 사람과 동행한다면 기쁜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이 어떤 길인가에 관심을 갖기 전에, 그 길이 어떤 길이든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에 복된 길이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항상 죽음의 두려움을 일으켜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하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우리는 항상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질서 안에서 모든 만물이 유지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름답게 만드시고 신실하게 붙드심을 신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