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둔한 제자들, 두 번 안수를 통한 교훈(막 8:14-26)
예수님의 경고(막 8:14-21)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그들이 탄 배 안에는 빵이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16 제자들은 서로 수군거리기를 "우리에게 빵이 없어서 그러시는가 보다" 하였다.
17 예수께서 이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는 것을 두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 너희는 남은 빵 부스러기를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열두 광주리입니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남은 부스러기를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일곱 광주리입니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벳새다 맹인을 치유하심(막 8:22-26)
22 그리고 그들은 벳새다로 갔다. 사람들이 눈먼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려와서, 손을 대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23 예수께서 그 눈먼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 두 눈에 침을 뱉고, 그에게 손을 얹으시고서 물으셨다. "무엇이 보이느냐?"
24 그 사람이 쳐다보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의 두 눈에 손을 얹으셨다. 그 사람이 뚫어지듯이 바라보더니,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26 예수께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말씀하셨다. "마을로 들어가지 말아라."
<말씀묵상>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누룩은 천국 비유에 나오기도 하지만(마 13:33), 대부분 부패와 변질의 특성과 연결해 죄 또는 잘못된 교훈에 대한 비유로 사용됩니다(고전 5:6-8).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15절)라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의 계명보다 사람의 계명에 더 집중하는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완악함, 그리고 권력과 물질을 추구하는 헤롯의 탐욕을 누룩으로 비유해 그들의 잘못된 삶의 방식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은 양식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으로 여깁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이적을 경험했음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합니다. 둔한 마음으로는 예수님 말씀을 바르게 깨우칠 수 없습니다.
위선과 탐욕에 물들지 않도록 내가 주의할 대상은 누구(무엇)인가요?
헤롯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은 내 안의 누룩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을 경계하면서 하신 말씀은 오늘 나를 향한 경계의 말씀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열심은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면을 가집니다. 수준 높은 경건을 이뤘다고 자부한다면, 그것이 남을 향해서는 공격하는 무기가 됩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는 무시로, 자신에 대하여는 자부심을 넘어서 오만함과 독선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그것을 조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나는 헤롯처럼 탐욕에 물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권력을 탐하는 이에게서는 바른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부정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이에게서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권력을 탐하면, 끝없는 욕심에 사로잡혀, 악을 일삼으며, 끔찍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벳세다 맹인을 두 번 안수로 치유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벳새다에 도착하시자 사람들이 시각 장애인 한 명의 치유를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데가볼리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치유하실 때와 유사한 방법으로 벳새다 맹인을 치유하십니다(23절; 7:32-33). 그런데 데가볼리에서와 달리 벳새다에서는 두 번에 걸쳐 치유를 온전히 이루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맹인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안수를 받고도 시력이 불완전한 맹인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을 체험하고도 여전히 예수님의 신성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영적 상태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으로 봅니다. 또한 신앙은 '점진적으로' 성장한다는 교훈을 주시기 위함으로 봅니다.
주님은 믿음이 부족한 나를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시나요?
주님은 먼저 정직하게 나의 현상태를 보게 하십니다. 나의 현상태에 대해서 주님앞에 정직하게 고백하며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보이면 안 보인다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의사앞에서 안 아픈척 위선을 부려봐야 내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 다음으로는 주님이 이끄시는대로 거부하지 않고 즐거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을 주시는 주체는 항상 주님이십니다. 믿음은 내가 열심히 해서 스스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받는데 나의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선물을 주실 때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게 나의 믿음입니다. 선물을 줄 때 받는 것을 행위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노력을 해서 선물을 받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받는 겁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영적 위선과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는 영적 게으름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안목과 깨닫는 지혜를 주소서. 약함을 강함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어둠을 빛으로 바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