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들의 중상모략, 중단된 성전 건축(에스라 4:11-24)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 적들이 사용한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악인들은 목적을 이루려 사실을 왜곡하고 날조합니다. 사마리아 총독 르훔을 중심으로 바사의 지방 관리들이 아닥사스다왕에게 유다 사람들을 고소합니다. 고소장은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지으면 왕에게 반역하고 세금과 조공도 바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건축은 훗날 이루어지기에, 본문은 적들이 보낸 고발장의 예시로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왕이 가장 경계하는 ‘반란’이란 사안을 고발장에 담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중상모략하면서도 오로지 왕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고발한다고 포장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에는 방해가 따릅니다. 그러나 대적의 방해가 치밀하고 조직적이며 왜곡이 난무할지라도 하나님 주권 아래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거짓된 모함과 비방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선한 삶을 살고자 할 때 우리에게는 반드시 거짓된 모함과 비방이 따를 것입니다. 오늘 에스라 본문에 나온 예도 있고 예수님 역시도 세상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신인 사탄과 그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다가 당하는 마땅한 고난이 아니라 주님의 선을 행하다가 겪는 애매한 고난이라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여기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사람들의 거짓된 모함과 비방에 우리는 정직하게 사실 여부를 밝혀야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선하고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반드시 진리대로 심판하실 것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주님을 기억하며 그분을 본받아야 합니다.
적들의 고발을 믿은 아닥사스다왕은 어떤 조치를 내렸나요?
희망으로 시작된 성전 건축은 적들의 방해로 좌절될 위기에 처합니다. 아닥사스다왕은 르훔과 심새의 고발을 그대로 믿고 예루살렘을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의 소굴’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읍 재건을 중단하라는 조서를 내립니다. 유다 사람들이 반역하리라는 중상모략이 제대로 먹힌 것입니다. 르훔과 심새는 왕의 조서를 받자마자 군사들을 동원해 성벽 건축을 중단시킵니다. 24절은 다시 성전 건축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보고합니다. 이렇게 ‘성전’과 ‘성벽’ 건축이 한 사건처럼 기록된 것은, 에스라서가 두 개의 건축을 예루살렘 재건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확신을 갖고 시작한 사역이 좌절될 때 어떻게 극복하나요?
먼저 우리가 가졌던 그 확신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낳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연단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시험을 당하는 것이 우리의 욕심 때문이라면 우리는 진리되신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우리 속에 심어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경우의 좌절 모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내 뜻과 확신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인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인내하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자신의 기득권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거짓된 모함과 비방을 서슴치 않는 세상과 오늘도 마주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겪는 애매한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기억하므로 진리안에서 인내하게 하소서. 주님의 뜻을 따라 걷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