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손손 반역자로 기억되는 이름, 압살롬(삼하 18:16-23)
돌무더기 무덤에 묻힌 압살롬(삼하 18:16-18)
16 그런 다음에 요압이 나팔을 부니, 백성이 이스라엘 사람을 뒤쫓다가 돌아왔다. 요압이 백성에게 싸움을 그치게 하였기 때문이다.
17 그들은 압살롬을 들어다가 숲 속의 깊은 구덩이에 집어던지고, 그 위에다가 아주 큰 돌무더기를 쌓았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망하여서, 저마다 자기 장막으로 돌아갔다.
18 평소에 압살롬은, 자기의 이름을 후대에 남길 아들이 없다고 생각하여, 살아 있을 때에 이미 자기 비석을 준비하여 세웠는데, 그것이 지금 '왕의 골짜기'에 있다. 압살롬이 그 돌기둥을 자기의 이름을 따서 불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오늘날까지도 '압살롬의 비석'이라고 한다.
승리를 전하려는 아히마하스(삼하 18:19-23)
19 그 때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요압에게 말하였다. "제가 임금님에게로 달려가서, 주님께서 임금님을 원수에게서 구원하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20 그러나 요압이 말렸다. "오늘은 아무리 좋은 소식이라도, 네가 전하여서는 안 된다. 너는 다른 날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도 된다. 그러나 오늘은 날이 아니다. 오늘은 임금님의 아들이 죽은 날이다."
21 그리고는, 요압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명령하였다. "네가 가서, 본 대로 임금님께 아뢰어라." 그러자 그 에티오피아 사람이 요압에게 절을 하고 달려갔다.
22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또다시 요압에게 말하였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으니, 저도 저 에티오피아 사람과 같이 가서 보고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요압은 또 말렸다. "아히마아스야, 네가 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가 보아야, 이 소식으로는 아무 상도 받지 못한다."
23 아히마아스가 또다시 말하였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으니, 저도 가겠습니다." 요압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더 말리지 않겠다." 아히마아스는 요단 계곡을 지나는 길로 달려서, 그 에티오피아 사람을 앞질렀다.
<말씀묵상>
압살롬이 예루살렘 가족묘가 아닌 돌무더기 무덤에 묻힌 이유는 무엇인가요?
압살롬의 죽음으로 이스라엘 내전이 끝납니다. 요압은 나팔을 불어 전쟁의 종결을 알립니다. 군사들은 숲에 큰 구덩이를 파 그곳에 압살롬을 던져 넣고 큰 돌무더기로 무덤을 만듭니다. 돌무더기는 저주받은 자의 무덤을 의미하는 것으로, 압살롬을 예루살렘 가족묘가 아닌 돌무더기 무덤에 묻은 일은 그가 반역자임을 말해 줍니다.암논의 성폭행 사건으로 시작된 압살롬의 원한은 반역으로 끝나고 맙니다. 아들이 없던 압살롬은 자기 이름이 잊히는 것을 막고자 자기 이름을 기념하는 비석을 왕의 골짜기에 세워 놓았습니다. 당시에는 후손이 없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겼습니다. 압살롬이 자기 이름을 남기고자 세운 기념비는 결과적으로 그가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반역자로 기억되는데,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하나님께서는 별걸 다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에 합당한 응답을 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심판의 날에는 가려진 것, 숨겨진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는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님께서 기억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 죄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알고 계시고 기억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일을 알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 일들 중에 구제한 것,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고 나누어주고 돕고 선행을 행한 것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히마아스가 승전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려 하자 요압이 만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되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윗에게 승전 소식을 전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승전 소식이 다윗에게는 아들을 잃은 슬픈 소식이기에 이를 알리면 미움을 받을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입니다. 이에 요압은 다른 날에 소식을 전하라며 만류합니다. 그 대신 요압은 에티오피아 사람 한 명을 뽑아 다윗에게 승전과 압살롬의 소식을 전하도록 보냅니다. 아히마아스는 자신도 보내 달라고 계속 요청하고, 결국 요압의 허락을 받습니다. 그는 먼저 출발한 에티오피아 사람과 다른 길로 앞서 달려갑니다. 아히마아스가 승전 소식을 먼저 전하려고 애쓴 이유는 다윗에게 자신의 충성심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상대의 상황을 고려해 말을 가려서 하는 지혜가 있나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타인과 소통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를 교환합니다. 인간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러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과거의 삶과 현재의 생활 속에서도 유의해야 되는 것이 상황에 걸맞는 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였듯이 인간 역시 말로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생각을 전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나의 말이 칼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유순한 말은 분노를 쉬게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용한 언어로 그 인격을 드러내기도 하므로 할 수만 있으면 사람은 대화에서 부드럽고 상냥한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억울하고 참담한 상황에서도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원망과 한탄을 멈추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우리 이름을 이 땅에 남기기 위해 애쓰지 않고 하나님 이름을 대대로 전하며 영원히 드높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