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 새끼를 타신 겸손과 평화의 왕(막 11:1-10)
예수님의 왕적 권위(막 11:1-6)
1 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곧 올리브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둘을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3 어느 누가 '왜 이러는 거요?' 하고 물으면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4 그들은 가서, 새끼 나귀가 바깥 길 쪽으로 나 있는 문에 매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풀었다.
5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들에게 물었다. "새끼 나귀를 풀다니, 무슨 짓이오?"
6 제자들은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막 11:7-10)
7 제자들이 그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등에 걸쳐놓으니, 예수께서 그 위에 올라 타셨다.
8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들에서 잎 많은 생나무 가지들을 꺾어다가 길에다 깔았다.
9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 ㉠시 118:25; 26
10 "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말씀묵상>
나귀 새끼를 끌어온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왕적 권위가 어떻게 드러났나요?
사명을 이루실 때가 이르자 예수님은 그분의 왕적 권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이 제자 둘을 보내시며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어오라고 명하십니다(2절). 당시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는 신성한 목적에 사용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라고 묻는 나귀 주인에게는 "주님이 쓰시려 하십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하게 하십니다(3절). 예수님은 이 일을 왕적 권한으로 명하십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자요 주인이시기에 어떤 것이라도 그분이 필요로 하시는 때에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나귀 새끼를 끌어오는 과정에서 나귀 주인의 온전한 순종이 돋보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만물의 창조자로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물질과 시간을 기꺼이 그분께 바칩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주님께 기꺼이 드릴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냐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다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던 내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자체가 이미 크나큰 복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불행입니다.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모든 재산을 다 내 놓아야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다고 하면 나는 모든 재산을 다 내놓고 하나님께 가겠습니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면 모든 것 다 희생하고라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꺼이 드려야 할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나의 마음, 나의 중심, 나의 삶을 주님께 드릴때 주님께서 써주시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말이 아닌 나귀를 타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예언의 성취입니다(슥 9:9).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은 그분의 나라가 로마 황제가 추구하는 '압제와 전쟁의 나라'가 아닌 겸손으로 세우는 '섬김과 평화의 나라'임을 나타냅니다.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길 위에 겉옷을 펴는 행동은 충성과 존경을 뜻하고, 손에 든 종려 가지는 승리와 번영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이 외쳐 부르는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시 118:25-26). 나귀를 타신 평화의 왕은 죄로 인해 고통당하는 인류의 구원자십니다.
나는 평화의 왕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주가 쓰시겠다는 말은 우리들의 신앙과 삶의 태도를 규정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소유를 맡아서 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주인이 오셔서 지금 써야 한다고 할때 우리 곳간의 열쇠를 내어드리는 것이 청지기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 시간, 달란트는 우리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필요로 할때 사용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기꺼이 평화의 왕되신 주님을 위해 내어 놓을 때 주님은 우리 인생을 오히려 더 영광스럽게 만드십니다. 따로 우리의 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작정하신 때가 바로 우리의 때입니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뒤로 뺄 필요도 없습니다. 평화의 왕이 부르시면 바로 응답하는 것이 왕의 부름에 합당한 우리의 사랑과 존경의 표현입니다.
<오늘의 기도>
겸손의 왕이신 주님,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인생을 구원하시는 크신 은혜를 찬송합니다. 오늘도 제 삶의 중심에 주님이 임하시도록 충성의 겉옷을 펼치고 기쁨의 가지를 흔들게 하소서. "주님이 쓰시겠다."라고 하시면 어떤 것이라도 내어 드리며 왕이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