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아는 자가 실천할 가장 큰 계명(마 22:34-46)
예수님이 율법의 핵심으로 드신 계명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주신 계명 중 가장 큰 것을 찾으려는 시도는 유대인들의 관심사였습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해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의 의도를 아심에도 예수님은 교훈의 기회로 삼으십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는 계명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십니다(신 6:5).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라는 말은 둘째 계명이 첫째 명명과 동등함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는 것입니다(레 19:18). 이 두 계명이 율법의 핵심 요약입니다. 율법사는 지식적 측면에서 질문하지만, 예수님은 '사랑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답하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균형 있게 실천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을 이루도록 내가 보완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세상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새 생명의 메시지를 가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복음의 더 큰 그림 속에서 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계명을 우리 힘으로 순종해야 하는 명령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초대와 약속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 가운데는 증오와 교만이 차츰 없어지고 사랑이 실제로 자리잡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로 부른 것은 메시아의 어떤 면을 드러내나요?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만 이해하면 바르게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바리새인들이 '다윗의 자손'이라 답합니다. 유대인들은 시편 110편 1절을 메시아에 관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예수님은 이 시를 인용해, 다윗이 메시아를 '주'라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다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로 오신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넘어뜨리려는 예수님이 다윗이 '주'라 불렀던 바로 그분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영원히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때마다 그분 앞에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할까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하시고 치유하시는 통치를 이 세상에 가져오시는 메시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적인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그 발 아래에 두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뜻을 세우고 예수님이 능력으로 그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그분이 원하는 뜻을 세우시고 그분의 능력으로 내 삶안에서 그것을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때마다 그분 앞에 우리의 마음가짐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사모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주님 보시기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더 선하고 좋은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삶의 방식로 초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고 그 삶을 경험하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전 우리 마음안에서 치열한 영적 싸움이 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통치를 이루실 것을 약속하신 그 약속을 붙들고 주님을 따라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