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의 장을 열어주는 선한 중재자(행 9:23-31)
사울이 다메섹을 탈출함(행 9:23-25)
23 여러 날이 지나서, 유대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모의하였는데,
24 그들의 음모가 사울에게 알려졌다. 그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모든 성문을 지키고 있었다.
25 그러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서, 성 바깥으로 달아 내렸다.
사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함(행 9:26-31)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거기에 있는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사울이 제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였다.
27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을 맞아들여, 사도들에게로 데려가서, 사울이 길에서 주님을 본 일과,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28 그래서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예루살렘을 자유로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하였고,
29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과 말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꾀하였다.
30 신도들이 이 일을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냈다.
31 그러는 동안에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걸쳐서 평화를 누리면서 튼튼히 서 갔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로 정진해서,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말씀묵상>
다메섹에서 제자들은 위기에 처한 사울을 어떻게 피신시켰나요?
하나님은 복음 전도자를 지키십니다. '여러 날'이 지나서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합니다. 사울이 다른 곳에서 증언한 내용을 참고할 때(갈 1:11-24 등 여기서 '여러 날'(23절)은 그가 회심하고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라비아에가서 머문 후에 다시 다메섹으로돌아와서 복음을 전하던 기간으로 봅니다. 유대인들이 사울을 그냥 놔둘 수 없는 이유는 그로 인해 유대교적 신념과 유대 사회 체계가 붕괴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고, 사울의 제자들은 사울을 다메섹에서 탈출시킵니다 사탄은 복음 전도자를 박해하고 죽이려 하지만, 하나님은 피할 길을 여시고 그를 지키십니다.
위기 상황에 몰렸을 때 주님은 나를 어떻게 도우셨나요?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 가운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큰 업적을 이룬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그 위치에 선 사람은 없습니다. 도움이라면 사람에게서 받는 도움도 있겠으나,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시대와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가장 힘 있는 도움입니다. 사람들의 도움은 실패할 수도 있고 오히려 잘못되어 망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은 항상 우리를 영원한 구원과 승리의 길로 이끌어갑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서 행하는 일은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서 돕지 아니하시면 사람의 수고가 헛되다는 말씀합니다(시 127:1).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하는 것, 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예루살에서 사울이 제자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그를 두려워하고 꺼립니다. 이때 사도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인 바나바가 나서서 중재합니다. 제자들이 마음을 열고 사울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그의 선한 행실이 밑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나바의 중재와 추천으로 사울은 그들과 교제하게 됩니다. 이때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15일을 보내며 제자들과 교제합니다(갈 1:18-19). 그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며 그리스말을 하는 유대인들과 목숨을 건 변론을 합니다. 그리스말을 하는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 하자 형제들이사율을 그의 고향 다소로 보냅니다. 이후 사울은 등장하지 않다가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가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합니다(11:25).
나는 서로 불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중재자인가요?
성경은 사람이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게 보셔서 하와를 창조하시고 가정을 이루도록 해주신 것을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 2:18~25). 부부 둘이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서로 교통하며 도우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의 죄를 용서함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런 용서가 바로 그리스도인이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서로 돕는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주님의 당부는 사랑을 통해 선한 중재자로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삶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다른 사람의 믿음을 우리의 기준으로 가늠하고 의심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나바처럼 곤경에 처한 지체를 돌아보며 위로하게 하소서. 사람과 상황을 모두 움직여 우리를 안전하게 덮으시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평안히 거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