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적 공의의 잣대로는 위로를 주지 못합니다(욥기 8:1-7)
빌닷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관해 확신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교리적 교훈이나 가르침만으로는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빌닷은 엘리바스보다 강력한 어조로 욥을 비판합니다. 그는 "언제까지 네가 그런 투로 말을 계속할 테냐?"라고 다그칩니다. '언제까지'(7:19)와 '바람'(6:26)은 욥이 탄식하며 언급한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빌닷은 '거센 바람'(2절)이라고 하며 욥의 말이 제어할 수 없이 거칠고 위험천만해 바람같이 사라질 공허한 말임을 드러냅니다. 빌닷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합니다(3절). "너는, 하나님이 심판을 잘못하신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수사적 질문은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성도는 절대화된 교리로 하나님의 정의를 제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이 주는 유익과 더불어 위험성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인과응보의 논리안에 갇혀있는 것처럼 말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인과응보의 논리안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해로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을 나의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사 55:8-9)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 갇혀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척 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확신을 높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될 것이다."는 말이 욥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빌닷은 자신의 확신을 욥의 자녀들에게도 적용합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기에 욥의 자녀들의 죽음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직 살아 있는 욥에게는 하나님을 찾고 자비를 구함으로 회복을 경험하라고 촉구합니다(5-6절; 참조. 5:8). 이어서 그 유명한 말을 합니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될 것이다"(7절). 욥기 전체를 볼 때 빌닷의 말은 사실로 증명되지만, 자신이 확신하는 교리의 틀 속에 갇힌 빌닷의 말이 욥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욥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고난에 대한 이해 없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맹목적 신앙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문맥을 고려한 말씀 묵상이 왜 필요한가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뉘앙스로 그런 말을 했는지 파악해야 본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지 단지 들리는 말을 문자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마치 누군가가 비꼬며서 "잘났어, 정말!"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마치 자신을 칭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욥기 8:7절을 문맥과 상관없이 그 구절만 가져다가 인용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태도입니다. 이것은 심지어 하나님을 모욕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성경본문을 우리에게 주셨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내눈에 좋아 보이는대로 내 입맛대로 성경구절을 문자적으로만 가져다가 내 생각을 표현하는데 사용한다면 이것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문맥과 상관없이 가져다가 자기 입맛대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이단들입니다. 우리도 이단과 같은 태도를 가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높인다고 하면서도 나의 생각과 나의 확신을 높이는 교만을 회개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에 좋은대로 내 눈에 좋은대로 구절만 가져다가 인용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하게 하소서. 외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우리가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이웃을 바라보며 사랑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기를 사모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