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더할 뿐인 헛된 위로자(욥기 16:1-17)
욥이 친구들을 '나를 괴롭게하는 위로자들'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감과 배려가 결여된 말은 상처만 줄 뿐입니다. 욥은 친구들로부터 위로는커녕 오히려 수모와 상처를 받습니다. 이에 욥은 친구들을 '나를 괴롭게하는 위로자들'(2절)이라고 평합니다. 이는 상반된 의미의 말을 대조시켜 효과를 극대화하는 '모순 어법'입니다. 욥은 자신을 위로하려고 방문한 친구들이 오히려 괴로움을 가중시키는 모순을 폭로합니다. 그는 친구들의 말을 '헛된 소리'(바람의 말들)로 묘사하면서 이전에 그들이 '바람'비유로 자신의 말을 비난했던 것을 그대로 되돌려 줍니다(3절; 8:2; 15:2). 하지만 온갖 말을 쏟아 내도 그의 고통은 그대로입니다(6절). 욥이 기대하고 소망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위로라는 명목으로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가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때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자리에 충분히 서보지 않고서 내 자리에 서서 나의 관점으로 그의 상황을 판단하여 답을 주고자하는 태도입니다. 많은 경우에 그런 위로는 위로가 되기 보다는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하는 말일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오해없이 소통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서로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서로 느끼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도 무조건 나와 같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소통하기 위해 충분히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고,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상대방을 공감하면서 나누는 말이 참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일은 욥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욥은 현실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합니다. 그는 자신을 기진맥하게 하고 자신의 온 집안을 황폐하게 만든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욥을 원수처럼 대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그를 향한 사람들의 태도 또한 적대적으로 변합니다. 욥은 무리가 자신을 경멸하고 뺨을 치며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사냥감을 찾아 추적하는 맹수나 사냥꾼과도 같습니다. 그 결과 욥은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비참한 지경에 이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욥은 자신의 손에는 폭행이 없고 자신의 기도는 진실하다고 주장합니다(17절). 이는 시편 기자들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시 7:3-5 등).
고난 중에 사람들의 말과 태도로 인해 괴로울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사람이 사람의 말로 힘을 얻기도 하고 사람의 말로 괴로움을 겪기도 합니다. 때로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덮어놓고 비난하는 말을 들을 때는 마음이 답답하고 분노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태에 머물러 버리면 사람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로 인해 사람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 그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 삶에서 겪는 모든 일들을 통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시고자 하시는 선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묻고 잠잠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고통, 나의 감정에 우물안에서 벗어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기대하며 괴로움이 소망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와 성내기는 더디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다른 이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겸손과 인내를 배우게 하소서. 모든 상황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가시는 주님의 계획에 기쁘게 동참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