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악인의 운명이라는 섣부른 단언(욥기 18:1-21)
빌닷은 욥의 어떤 모습을 비난했나요?(4절)
과격한 논쟁은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빌닷의 발언에서 특이한 점은 상대를 '너희'(2절)로 지칭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욥과 두 친구 모두 의미 있는 논쟁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깨달음' 이후에야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어찌하여 너는 우리를 짐승처럼 여기며, 어찌하여 우리를 어리석게 보느냐?"(3절)라는 표현은 욥과 엘리바스가 '사람은 누구나 부정하다'고 한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4:17; 14:4; 15:14). 빌닷은 '화가 치밀어서 제 몸을 갈기갈기 찢는 사람'(4절)이라고 욥을 공격합니다. 욥을 찢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16:9) 욥 자신의 분노라는 것입니다. 빌닷은 이 세상이 '행위 화복 관계'의 원칙으로 운행됨을 분명히 합니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른이건 아이건 누군가에게 그 존재를 무시당하고 따돌림당하는 것은 굉장히 기분이 나쁘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는 각 사람의 '나'라고 하는 수많은 중심이 생깁니다. 이렇게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할 때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남보다 자기를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깊어진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염려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빌닷의 묘사는 누구의 운명을 말하고자 함일까요?
빌닷은 악인이 필연적으로 맞이할 운명을 묘사합니다. 첫째, 악인의 빛은 사라진다고 합니다(5-6절). 빛은 번영과 생명의 상징입니다. 악인의 빛이 사라진다는 것은 악인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둘째, 악인은 자기 꾀에 빠져 넘어진다고 합니다(7-10절). 악인은 다른 사람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파고 덫을 놓지만, 그 함정과 덫에 자신이 걸리고 맙니다. 셋째, 악인은 공포와 재앙과 질병을 경험한다고 합니다(11-13절). 악인은 결코 평안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넷째, 악인의 삶은 기억조차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14-20절).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빌닷의 진술은 결국 욥의 고난당하는 현실에 대한 정죄와 비난으로 귀결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 내가 욥처럼 비난받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매 순간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나 다른 이들에게 억울하게 비난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히브리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믿음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들을 실현해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 나라가 내게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그 세계를 오늘의 나의 삶의 자리에서 실현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의롭고 정의로우신 분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그 공의와 정의에 맞게 살기위해 애써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나 나를 비난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진리임을 믿고 바라며 마치 그것이 이루어진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나의 생각 나의 관심 나의 감정이라는 나 중심적에 세계에 갇혀 다른 이들을 단정짓고 비난하는 말과 행동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소서. 우리를 어둠과 사탄의 나라에서 건져내어 빛과 사랑의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주신 뜻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법에 다스림을 받고 사랑가는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