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

가문의 치욕으로 이어진 잘못된 욕정(삼하 13:1-14)

Posted by 행복한 말씀묵상팀 on

다말에게 욕정을 품은 암논(삼하 13:1-5)    

1 그 뒤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름다운 누이가 있는데, 이름은 다말이었다. 그런데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였다.

2 암논은 자기의 누이 다말을 사랑하였으나,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병이 나고 말았다.

3 암논에게는 요나답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다. 요나답은 아주 교활한 인물이었다.

4 마침 그가 암논에게 물었다. "왕자님, 나날이 이렇게 안색이 수척해지시는데, 웬일이십니까? 나에게 그 까닭을 알려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암논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내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오."

5 그러자 요나답이 그에게 제안하였다. "왕자님은 침상에 누워서, 병이 든 체 하십시오. 부왕께서 문병하러 오시면, 누이 다말을 보내 달라고 하십시오. 누이 다말이 와서 왕자님이 드실 음식을 요리하게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십시오. 다말이 왕자님 앞에서 음식을 요리하면, 왕자님이 그것을 보면서, 그의 손에서 직접 받아 먹고 싶다고 말씀드리십시오."

다말을 범한 암논(삼하 13:6-14)

6 그리하여 암논이 침상에 누워서, 병든 체 하고 있으니, 과연 다윗 왕이 그를 문병하러 왔다. 그 때에 암논이 왕에게 요청하였다. "누이 다말을 보내 주십시오. 제가 보는 앞에서, 누이가 맛있는 빵 몇 개라도 만들어서, 그것을 저에게 직접 먹여 주게 하여 주십시오."

7 다윗은 다말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어서 지시하였다. "어서 네 오라비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먹을 것을 좀 만들어 주어라."

8 다말이 자기의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보니, 그가 침상에 누워 있었다. 다말이 밀가루를 가져다가, 이겨서, 그가 보는 앞에서 맛있는 빵 몇 개를 빚어, 잘 구웠다.

9 그리고 다말이 냄비째 가져다가 암논 앞에서 그릇에 담아 주었으나, 암논은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사람들을 다 밖으로 내보내라고 말하고는,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간 뒤에,

10 다말에게 말하였다. "그 빵을 이 침실로 가지고 들어와서, 네가 손수 나에게 먹여 다오." 그래서 다말은 손수 만든 빵을 들고, 자기의 오라버니 암논의 침실로 들어갔다.

11 다말이 그에게 먹여 주려고 다가서니, 그는 다말을 끌어안고, 함께 눕자고 하였다.

12 다말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렇게 하지 마십시오, 오라버니! 이스라엘에는 이러한 법이 없습니다. 제발 나에게 욕을 보이지 마십시오. 제발 이런 악한 일을 저지르지 말아 주십시오.

13 오라버니가 나에게 이렇게 하시면, 내가 이런 수치를 당하고서,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오라버니도 또한 이스라엘에서 아주 정신 빠진 사람들 가운데 하나와 똑같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제발 임금님께 말씀을 드려 보십시오. 나를 오라버니에게 주기를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4 다말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암논은 다말이 애원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 센 힘으로 그를 눕혀서, 억지로 욕을 보였다. 

<말씀묵상>

잘못된 욕정을 품은 암논에게 간교한 요나답이 일러 방법은 무엇인가요?

다윗의 범죄 이후 다윗 집안에 범죄가 이어집니다. 다윗의 장남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에게 잘못된 욕정을 품습니다. '그를 사랑하였다'(1)라고 하지만, 다말을 범한 이후 행동을 이는 아름다운 다말을 취하고 싶은 성욕과 권력욕이지 정상적인 사랑은 아닙니다(13:15). 다말에 대한 욕정으로 전전긍긍하던 암논 앞에 간교한 요나답이 등장합니다. '교활한' 해당하는 히브리어(하캄) '지혜로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나답은 암논의 욕정을 꾸짖고 책망해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도록 하는 참지혜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이자 아버지인 다윗의 권위를 이용해 욕정을 성취하는 어리석은 길을 제시합니다. 암논은 요나답의 교활한 제안을 지혜롭다 여기며 죄의 길을 선택합니다.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간은 본능처럼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욕심은 “어떠한 것을 정도에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평생 일하지 않고 놀고 먹을 만큼 쌓아 놓아도 쌓아놓으려고 합니다. 욕심은 결코 만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심을 마귀는 교묘하게 이용하고, 유혹해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욕심대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정욕과 욕심대로 살려고 하는 내가 십자가에 박히면 안에 주님이 살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인정할 때에 겸손하게 되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암논은 범죄를 막으려는 다말의 설득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암논이 다윗에게 요청은 남매간의 우애로 보기에는 상당히 미심쩍습니다(6). 그럼에도 다윗은 의심하지 않고 암논에게 다말을 넘기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이는 범죄 이후 다윗이 하나님과 소워해졌다는 증거입니다. 아버지의 명을 따르던 다말은 암논이 성폭행하려고 하자 지혜로운 말로 그를 설득합니다.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고, 율법으로 금지된 것이며, 자신이 앞으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없게 하는 죄임을 알려 줍니다. 다말이 아버지를 통한 결혼 허락을 언급한 것은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는 임기응변으로 보입니다. 암논이 욕정에 눈멀어 다말을 범한 일은 일은 다윗 가문에 선고된 심판의 시작입니다(12:9-12). 

죄에 대한 경고를 직접적으로 들을 , 성도로서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성경은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책망해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은 악을 드러내고 행악자를 책망하며 사람들에게 구주가 필요함을 확신시키는 일종의 검사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죄에 대한 책망을 받는다는 것은 죄를 혐오스럽게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름다움, 순결, 거룩함을 보며 죄가 하나님과 공존할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생겨납니다. 죄에 대한 책망을 받는다는 것은 죄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을 얼마나 욕되게 하는지를 알면 죄에 대한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회개하게도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빛을 비춰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가 자신의 죄에 눈을 떠서 확신을 가지게 해주시며 우리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해주십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죄의 길을 걷는 어리석은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는지 돌아봅니다. 늘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우리 마음과 행동을 살피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하소서. 죄의 유혹을 과감히 끊어 내고 죄에 동조하지 않도록 매사에 민감히 분별하며 행하게 하소서.

Comments

to leave comment

© 2024 행복한교회 DFW   |   5517 Denton Hwy, Haltom City, TX US 76148